(출처-조선닷컴 2016.03.08 최보식 선임기자)
지금 내 배가 어디에 있는가?
내 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座標 어디인가?
航路를 제대로 잡고 있는가?
안철수 대표가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사방에는 적뿐이다. 광야(曠野)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했을 때 마음이 짠했다. 이렇게까지 궁색한 처지로 몰릴 줄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구름 위에 떠 있던 시절은 언제 지나가버렸는가.
하지만 그는 자기 연민(憐憫)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의 상처보다 그로 인해 대중이 입은 상처가 훨씬 더 깊다.
'수퍼맨'의 환상과 기대를 걸었던 대중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대중을 열광시켰던 '새 정치'라는 단어를 누더기처럼 만든 것도 그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이를 눈먼 대중의 탓으로만 돌리겠다면 어쩔 수는 없다.
얼마 전 출간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평전(評傳)에는 항해하는 배의 선장은 세 가지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젊은 날 원양어선을 몰고 참치를 잡는 동안 폭풍의 한가운데서 몇 번 사선(死線)을 넘었던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 내 배가 어디에 있는가?
내 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좌표(座標)가 어디인가?
항로(航路)를 제대로 잡고 있는가?"
안철수 국민의당은 당초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높은 지지율로 출항했다. 서로 누가 '제1 야당'이 될지 각축했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돼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좌표와 항로를 잃어버렸다.
지금은 그 배가 '정치판의 바다'에 왜 떠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따금 자신조차 모르게 됐다.
자신이 모르면 남들은 더욱 모른다.
세간의 관심이 식었다는 것만은 그도 느꼈던 것 같다. 창당 한 달째가 된 날 그는 마이크를 잡았다.
"이제부터 국민 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
어디라도 가고, 누구라도 만나겠다. 언제라도 가겠다.
무슨 말이라도 듣겠다." 그 뒤 그가 지하철을 타는 장면이 '뉴스'로 보도됐다.
그동안 그는 국민의 소리를 못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진공 실험실에서 귀를 막고 지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어디로 가서 누구에게 무슨 말이라도 들어봐야만 자신의 좌표와 항로를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는 지금 와서 왜 또 이럴까. 과거에 한번 재미를 본 '민생 쇼'를 떠올렸는지 모른다.
4년 전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였던 그는 "출마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국민 생각을 들어보겠다"며 전국 민심 탐방을 발표했다.
재래시장과 정미소 등에 가서 주민들과 의견을 나눴고, 대학에서는 토크 콘서트를 했다고 한다.
그런 뒤 출마를 선언했다.
지금도 그는 고장 난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것처럼 '담대한 변화'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담대하게' 변화시킬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과연 실행 의지가 있는 것인지 대중은 여전히 모른다.
그의 브랜드였던 '새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모를 것이라고 대중은 점점 확신하게 됐다.
한 시절 대중은 그를 향해 마구 달려갔다.
이런 현상을 자신의 '진심'을 알고서 대중이 따르는 것으로 해석했다.
"따라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리더로 인정하고,
그런 사람에게 대중이 선물로 주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그 리더십의 바탕은 진심이다. 진심이 있어야 사람이 따라온다.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왜 이제 사람들은 따라오지 않는 걸까. 그의 정치적 성패는 결국 본인에게 달린 것이다.
국민의당을 만들었을 때 그가 이런 대국민 약속을 했다면 혹 달라졌을까.
"새 정치를 위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나는 부패·무능·저질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 이런 구상을 갖고 있다.
내 역할은 정치 개혁에 있지 대선에 있지 않다.
개혁을 못 해내면 차기(次期)에는 나가지 않겠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는 '가치(價値)'가 아니라 자기 사람을 쓰는 걸로 다퉜다.
함께 한 인사들은 그의 들러리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 뒤에는 표(票)와 세력만 되는 누구와도 손잡았다.
지금 당 구성원들을 보라.
설령 이들과 함께 '제3당'으로 남게 된들 어떤 정치 혁신을 이룰지 의문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정치판을 위해 딱 한 가지 잘한 역할은 더불어민주당에 김종인씨를 불러들이게 한 것이다.
'때묻은' 김종인씨가
"운동권 정당을 탈피하겠다. 좌우 이념에 고정되는 것은 옛날 사고다. 실용적인 정당을 하겠다"며
판을 흔들어놓을 줄은 누구도 예상 못 했다.
'착한' 안철수에게 기대했던 것을, '얼굴마담 할 생각이 없다'며 권력 의지를 드러내는 76세 노인이 대신 해내고 있다.
이제 그가 광야에서 외친들 그의 뜻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될지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고립될 공산도 높다.
애초에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좌표와 다르게 가고 있다면 원점에서 항해의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의 역량이 안 되면서 자리를 지키는 것은 욕심이다.
그건 진심이 아니다.
'人文,社會科學 > 敎養·提言.思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 읽기] 낯선 세상과 대학 / 윤태웅 (0) | 2016.03.10 |
---|---|
[시니어 에세이]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 (0) | 2016.03.08 |
애견과 입맞춤vs사람끼리 키스..세균 감염 확률 높은 건? (0) | 2016.03.07 |
[천자칼럼] 꽃 유행 (0) | 2016.03.06 |
[삶의 향기] 공평한 나눔의 지혜 (0) | 2016.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