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6-05-20 03:00:00
신원건 사진부 차장
우선 ‘백안(白眼)증’이다. 흰자가 많이 보이는, 일명 ‘째려보는 눈’이다. 사진기자는 취재 현장에 도착하면 본능적으로 재빨리 뉴스감과 주변을 ‘스캔’한다. 핵심 ‘그림’을 찾기 위해서다. 시간에 쫓기는 현장일수록 이 증세는 심해진다. 문제는 이 버릇이 사석에까지 무의식적으로 이어진다는 것. 마땅한 치료법은 없다. 눈을 굴리지 않고 멍한 표정을 짓는다. 아예 눈을 마주치지 않기도 한다. 그러다 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둘째는 일명 ‘사도 도마 증후군’이다. 예수의 제자인 도마가 스승의 부활 소식에 “그분 손의 못 자국을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다(요한복음)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의심이 많지만 정작 눈으로 보게 되면 그냥 믿는 습관이다. 거꾸로 말하면 보이지 않는 것은 의심하지도, 잘 캐묻지도 않는다. 공개된 사건을 사진 취재하고 난 며칠 뒤 그 사건 이면의 다른 진실이 밝혀지는 경험을 간혹 겪곤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비주얼 난독증’도 무시할 수 없다. 가족 친지들과 여행할 때 이 증세가 두드러진다. 명소에서 동행자들은 경탄과 환호를 연발하는데도 시큰둥하게 “이게 뭐가 멋있느냐”고 핀잔을 줘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재수 없는 멤버다. 어지간한 ‘비주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버릇이다. 사진은 많이 찍는데 오히려 ‘시각 독해력’이 떨어지는 역설에 빠진 것. 소박한 볼거리라도 “와” 하는 감탄사를 반복하며 꼼꼼히 음미하는 것이 치료법이다.
다른 직업에서도 발견되는 ‘폭식, 속식’은 사진기자도 피해 가지 못한다. 많은 양의 밥을 빨리 먹는다. 딱히 정해진 점심시간이 없다 보니 시간이 빡빡하다. 취재 도중 짬을 내 식사하다가 주요 장면을 놓치는 트라우마가 있다면 더 급하다. 느긋하게 먹을 수 있을 때도 이미 버릇이 된 속도는 줄지 않는다. 소화불량과 위장 장애는 덤.
마지막으로 ‘공감 저하(低下)증’. 취재 현장에서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을 배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니 비난받기 일쑤다. 변명이지만, 사진기자들은 결코 냉혈한이 아니다. 카메라 뒤에서 ‘울컥’해 취재가 끝난 뒤 마음이 먹먹해져 한동안 손에 아무것도 못 잡곤 한다. 일반인들에 비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경우가 훨씬 잦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중심이 되는 뉴스를 취재하는 일이 사진기자의 일상이다. 아파하는 이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고통의 공감이 두려워 스스로를 취재원과 일시적으로라도 분리하려는,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도 작동하는 듯하다.
현장을 피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걸리는 증상도 있지만, 그중에는 매서운 지적을 받고도 관성 때문에 고치지 못하는 직업병도 있다. 그럴 경우 따끔한 눈총이 느껴진다. 그래도 ‘난치 증세’가 한 방에 치료되기 어렵지만.
신원건 사진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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