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설왕설래] 단오

바람아님 2016. 6. 9. 07:41
세계일보 2016.06.08. 20:55

오늘이 음력 5월5일, 단오(端午)다. 예전에는 5라는 양수(陽數)가 겹쳐 1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성한 날로 여겼다. 단오를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五節), 단양(端陽)이라고도 부른 이유다. 설날,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이었다. 평안도 지방에선 고운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장만해 서로 모여 즐기는 것이 설날과 같았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 했다. 단오에 수리취나 쑥을 뜯어 멥쌀가루에 넣고 떡을 해먹었는데, 그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둥글어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고려가요 ‘동동(動動)’에는 “5월 5일에 아으 수릿날 아침 약은/ 천 년을 길이 사실 약이라 받치옵니다./ 아으 동동다리”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 후기 학자 홍석모는 ‘동국세시기’에서 “남녀 아이들은 창포 끓인 물로 얼굴을 씻고 붉은색과 녹색의 새 옷을 입는다. 부녀자들은 창포 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고, 더러는 그 끝에 연지로 ‘수(壽)’나 ‘복(福)’ 자를 새겨 쪽에 꽂아 전염병을 예방한다고 한다. 이것을 단오장(端午粧)이라 한다”고 했다. 남자는 창포 뿌리를 허리춤에 찼고, 창포가 무성한 물가에서 목욕했다. 창포는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잡귀를 쫓아내기 위한 부적을 만들어 방문 위에 붙이기도 했는데, 이를 천중부적 또는 단오부적이라 했다.


조선시대에는 이날 임금이 각 지방에서 진상한 부채를 신하들에게 하사했고,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부채를 선물로 주고받았다. 단오선(端午扇)이라 한다. 부녀자들은 그네뛰기 시합을 벌였다. 그네가 높이 올라갈수록 잘 뛰는 것으로 판단해 등수를 매겼다. 여성의 바깥 출입이 금기시되던 시절에는 억눌린 마음을 활짝 펼 기회였다. 남성들은 황소를 우승 상품으로 내건 씨름대회에 참가했다. 황해도 일대에선 봉산·강령·은율 탈춤 놀이가 벌어졌다.


단오굿으로 유명한 강릉 출신인 허균은 단오에 관한 여러 글을 남겼다. 문집 ‘성소부부고’에 1603년 강릉 단오제를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강릉 고을 사람들은 해마다 5월 길일에 대관령으로 가서 신을 맞이한 뒤 5일에 온갖 잡희를 베풀어 신을 즐겁게 해준다.” 그가 삼척부사 시절에 지은 시 ‘단양일’에선 “단양의 좋은 계절 바로 천중절이라/ 쑥잎이랑 창포꽃을 임금에게 올린다오./ 나그네 타향에서 기쁜 마음 적은데/ 난간 동쪽에 속절없이 그넷줄만 걸려 있네”라고 읊었다. 단오의 명절 색깔이 바랜 오늘날에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단오는 태양의 기운이 가장 성한 날이다. 날씨가 덥더라도 명절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이겨내는 건 어떨까.


박완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