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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앨빈 토플러가 한국에 던진 쓴소리···"저임금 바탕 굴뚝산업에 안주할 것인가"

바람아님 2016. 7. 1. 00:02

15년 전 앨빈 토플러가 한국에 던진 쓴소리···"저임금 바탕 굴뚝산업에 안주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2016.06.3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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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미래학 석학 고(故) 앨빈 토플러.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에서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종속국으로 남을 것인가, 경쟁력을 갖춘 선도국이 될 것인가에 대한 조속한 선택이 이뤄져야 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별세했다. 토플러는 2001년 6월 30일 고(故) 김대중 대통령에게 ‘위기를 넘어서 : 21세기 한국의 비전’이라는 보고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정확히 15년 전의 일이다.

그의 충고는 15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경제에도 유효해 보인다. 보고서를 통해 토플러는 ”한국이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겪은 이유는 90년대 초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됨에 따라 한국의 산업화 시대 경제발전모델이 더이상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며 “한국은 더이상 산업화시대 경제에 안주하지 말고 혁신적인 지식기반 경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 관련기사 『제3의 물결』서 정보화사회 예측 앨빈 토플러 별세

아래는 토플러 박사의 보고서 내용 요약본이다.

① 신경제와 한국경제의 미래
한국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저임금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종속국가(dependant country)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경쟁력을 확보하고 세계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선도국가(leading country)가 될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신경제 위기론'은 오류이다. 잘못된 수익모델을 선택한 신규기업의 도산과 위기는 역사적으로 볼때 시스템 변화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에 불과하다. 신경제 효과는 개별기업에 수익이나 기업가치의 증대로 나타나기 보다 생산성 향상,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소비자 효용증대, 실질임금 상승 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한국경제가 선택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지식기반경제 또는 신경제로의 전환이 한국경제의 미래를 결정한다. 신경제에서는 생산의 핵심요소가 ‘지식’이며 전자 화폐 사용의 활성화로 금융 및 투자의 흐름이 가속화된다.

향후 정보통신기술이 생물학을 혁신시키고 생물학이 다시 정보통신기술을 혁신시키며 결국은 경제 전체를 혁신시켜 인간 역사의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이 일어날 것이다.

② 한국의 지향 모델은 지식기반 경제
한국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정보화 인프라를 구축했으며 ‘제3의 물결’ 흐름에서 이제 한국이 쫓아갈 검증된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래 번영을 위해 한국 실정에 맞는 전략적 모형을 구상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수출주도형 제조업에 과감히 집중하고 IT 기술을 경제전반에 확산시키는데 실패함으로써 제3의 물결로의 경제전환에 실패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제3의 물결로의 경제 전환에 성공하기 위한 핵심요소는 정보통신 인프라가 비즈니스와 사회의 각 영역에서 얼마나 잘 활용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물리적 인프라뿐 아니라 통신서비스와 같은 사이버 인프라의 구축을 위해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한국경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은 덜 집중화되고, 덜 관료화되며, 덜 수직화된 형태로 변화해야 한다. 또 기존 산업사회에 적합한 정부조직은 지식기반 경제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 부문의 개혁은 필수적이다. 조직의 유연화와 함께 수평적 조직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

③ 기회의 창, 생물공학(BT)
건강관련 기술, 서비스 영역에서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직업창출이 기대되므로 한국은 BT(바이오기술)의 가장 중요한 수요자이자 수출 주도자로서 잠재력이 있다. 이를 위해 민간기업, 대학과 손잡고 '바이오벤처기금'을 조성해 미국ㆍ유럽ㆍ중국 등 100개 중소규모의 유망한 BT 선도기업에 투자하기를 권고한다.

그동안 BT의 발전은 컴퓨터ㆍ디지털기술ㆍ인터넷 등 IT에 힘입은 것이 사실이지만 앞으로는 BT가 바이오칩, DNA 컴퓨팅 등의 형태로 IT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④ '굴뚝경제' 시대 교육제도 개혁
한국의 교육체계는 반복작업하의 굴뚝경제체제에 기초한 형태로 발전되고 학생들을 교육시켜왔다. 한국 교육은 학생들이 21세기에 맞는 24시간 유연한 작업체계보다는 사라져가는 산업체제의 시스템에 알맞도록 짜여진 어긋난 교육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21세기 교육시스템은 학생들이 어느 곳에서나 혁신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길러줘야 한다. 한국 교육체계의 변화는 ‘교육공장’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는것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교과과정에서부터 교육시간과 장소에 이르기까지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다뤄야 한다.

인터넷은 평생교육을 실현하도록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또 은퇴한 간호사나 회계사, 컴퓨터프로그래머, 전기기술자를 비롯한 수백만 명의 잠재교사들도 가장 중요한 교육적자원이며 이를 낭비해서는 안된다.

▷ 이곳을 누르시면 보고서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정리=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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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앨빈 토플러와 한경

한국경제 2016.06.30. 18:06

앨빈 토플러가 대학시절 기계수리와 용접공으로 5년간 일한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육체노동에 의한 부의 창출보다 지식이나 정보에 의한 가치를 중시하던 그로선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가 몸소 체험한 노동의 중요성은 그의 저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토플러는 신문기자도 했고 포춘이나 플레이보이지에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IBM과 제록스, AT&T 등에서 근무하면서 배운 지식이 그를 미래학자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경제학자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산업 현장을 보고 미래를 예측한 인사이트들은 시대를 이끌었다. 그가 예언한 유전자 복제나 PC, 프로슈머의 출현, 재택근무 등 모든 게 현실화하고 있다. 시대적 예언자임에 틀림 없다.


특히 토플러를 좋아한 인물은 1980년대 중국의 개혁 개방을 이끌던 자오즈양 공산당 총서기였다. 그는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통해 중국의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다. 금서이던 이 책의 판매금지를 해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구상은 중국에선 먹혀들지 않았다.


오히려 토플러로부터 가장 영향을 받은 국가는 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산업화 물결의 정점이던 시대에 토플러를 만났다. 한국경제신문을 통해서였다. 1980년대부터 토플러는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결정적 계기는 1989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연이었다. 한경은 공식적인 저작권 계약을 통해 1989년에 ‘제3의 물결(The Third Wave)’과 ‘미래 쇼크(Future Shock)’를 내고 1991년 ‘권력이동(Power shift)’을 출간했다. 토플러의 대표작 세 권이 모두 한경에서 나왔다. 특히 ‘권력이동’은 34만4000부에 달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당시 사회과학 서적은 3만부만 넘어도 출판계에서 화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외국에선 ‘제3의 물결’이 가장 많이 팔렸지만 한국에선 ‘권력이동’이 많이 판매됐다.


토플러의 저서들은 이정표를 잃은 한국에 큰 방향을 제시했다. 한경은 토플러를 초청해 대중 강연회를 열고 석학들과 대담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성과는 10년 뒤 한국에서 나타났다. 세계의 정보화, 제3의 물결을 리드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토플러가 어제 87세로 별세했다. 토플러는 21세기 문맹이란 재학습할 수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라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토플러가 말한 문맹국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 토플러의 혜안이 그리워진다.


오춘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