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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언수 "쿨한 것보다 구질구질함이 삶의 본질"

바람아님 2016. 8. 28. 12:07

연합뉴스 2016.08.27. 10:01

 

신작 '뜨거운 피' 출간…전작 '설계자들'로 프랑스 추리문학상 후보


"한국문학에 이야기의 힘 부족…장편소설 더 풍부해져야"

 "우리 삶이 대체로 구질구질하지 않나요?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들과의 관계를 봐도 그렇잖아요. 쿨하거나 멋있는 것들보다는 그런 뜨겁고 구질구질한 것들이 우리 삶을 채우는 중요한 형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삶의 이야기를 소설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최근 신작 장편소설 '뜨거운 피'(문학동네)를 출간한 소설가 김언수(44)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소설은 1993년 부산의 어느 항구 지역을 배경으로 비루한 건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소설가 김언수. [문학동네 제공]
소설가 김언수. [문학동네 제공]

소설의 무대인 부산 앞바다와 항구, 산기슭에 자리 잡은 달동네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그는 어린 시절 그 동네에서 수많은 건달과 사창가 아가씨들, 서로 싸우는 상인들을 보며 자랐다고 한다.

"구질구질한 그 동네가 지긋지긋했어요. 작가가 되고서고 그런 얘기는 (소설로) 절대 안 쓰겠다고 생각했죠. '캐비닛'(그의 첫 장편소설) 같은 게 문학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 소설에서 그렇게 환상 속에 떠 있었던 게 점점 더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이 마흔이 넘으니 어린 시절 그 동네의 사랑스러운 면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의 고향에서 이웃에 살던 건달들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다. 그는 국내 영화감독들이 몇몇 건달을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만든 영화들에 실제와 다르게 포장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건달들의 삶이라는 게 대부분 찌질해요. 양복 살 돈이 없어서 운동복(트레이닝복) 입고 다니고 월수입도 제대로 없고 나이 마흔 넘어가면 싸움도 못 하죠. 옆에서 보면 그들 대부분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해요. 제가 살던 동네만 해도 세 집 걸러 한 집에 그런 전과자들이 있었으니 그게 가난한 사람들의 흔한 삶이었죠."


그렇게 삶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쓰다 보니 소설 분량이 600쪽에 달할 정도로 길어졌다.

"이야기는 자기 운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행 계획과 실제 여행이 다른 것처럼 이 이야기도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이야기가 크고 계속 확장되더군요. 피부에 달라붙는, 제 삶의 온도에 정확히 맞는 이야기여서 그런지 어쩌면 영원히 하염없이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실제 쓴 분량은 더 많은데 한 권으로 내려고 좀 줄였어요."

2002년 등단해 2006년 첫 장편소설 '캐비닛'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고 2010년 두 번째 장편 '설계자들'을 낸 뒤 6년 만에 세 번째 장편을 내놨으니 활동 기간에 비하면 발표작이 적은 편이다.


"사실 매년 한 편씩 쓰는데, 써놓고 주위에 보여주면 반응이 안 좋아서 다 쓰레기통에 넣었어요. 간단히 말해서 그동안 제가 장편을 쓰는 공부가 안 돼 있었다고 할 수 있죠. 작가들은 처음에 단편으로 등단하고 나서 장편도 잘 쓸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장편은 단편과는 건축의 규모가 달라서 그 구조를 다루는 공부를 탄탄하게 해야 쓸 수 있어요. 그 바탕 위에서 예술적인 표현도 가능한 겁니다. 그걸 공부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거죠. 아직도 어렵긴 하지만, 앞으로는 작품 내는 속도가 전보단 나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그는 한국문학이 단편소설 위주여서 장편이 적고 이야기의 힘이 부족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외국은 출판사가 책을 내주면서 등단시키는 구조여서 작가 지망생들이 장편을 먼저 써요. 그에 비해 우리는 처음에 단편으로 등단해서 장편 공부를 안 하니까 이야기를 잘 못 쓰죠. 또 우리 현실을 보면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가 나와도 '문학이 없다'거나 '문장이 허술하다'는 식으로 깎아내립니다. 제 생각엔 재밌는 이야기는 충무로에 있고, 문학판은 너무 (인간의) 내면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 반면, 충무로에는 그런 내면의 깊이가 없고요. 그 양쪽의 교류가 없이는 완성된 이야기가 안 나온다고 봅니다. 기존 문학의 관습이나 편견을 깨야 한다고 생각해요."


견고한 이야기를 구축하는 데 공을 들인 그의 작품들은 점점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암살 계획을 설계하는 살인청부업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전작 '설계자들'은 올해 초 프랑스에서 출간돼 호평받았고 최근 '2016 프랑스 추리문학대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 상은 프랑스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모리스 베르나르 앙드레브에 의해 1948년 제정돼 매년 자국 소설과 외국 소설로 부문을 나눠 최고의 추리문학 작품을 뽑는다. 엘러리 퀸, 마이클 코넬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이 상을 받았다. 아시아 작가가 이 상을 받은 적은 없다. 올해 선정 결과는 다음 달 초 발표된다.

'설계자들'은 또 최근 호주의 유력 출판사인 '텍스트 퍼블리싱'에도 판권이 팔렸다. 호주에서 영어로 번역돼 출간되면 향후 영미권 수출 전망도 밝아진다.

"사실 저는 이걸 아주 순수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썼는데, 장르문학이나 범죄·미스터리물로 분류되니까 재미있게 느껴져요. 지난 3월 파리도서전에 갔을 때 매대에 놓은 100여 권이 금방 팔려서 반응이 좋다고 느끼긴 했는데, 상 후보까지 올랐다니 기분이야 좋습니다. 번역을 맡은 최경란 씨와는 오랫동안 교류해왔는데, 한 문장 한 문장에 공을 들여 훌륭하게 번역해주셔서 굉장한 고마움을 갖고 있고요. 별로 기대는 안 하지만, 만약 상까지 받게 된다면 당연히 좋겠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