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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문학산책] 너희가 팔선녀를 믿느냐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바람아님 2016. 11. 10. 13:56

(조선일보 2016.11.10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최순실 게이트에 거론된 '팔선녀' 

원래는 전설 속 초자연적 존재… 김만중 소설 '구운몽'에도 등장

전근대라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자유의지와 평등의식 설파한 개성 강한 여성상 보여줘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한동안 팔선녀(八仙女)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항간에 떠돈 팔선녀의 실체는 아리송하다. 

권력과 재력을 모두 쥔 채 국정 농단에도 개입한 '유한 마담' 모임으로 추정됐을 뿐이다. 

원래 팔선녀는 무속에서 섬기던 초자연적 존재였다. 전설과 민담에 자주 등장했다. 고귀한 존재만은 

아니었다. 전통 가면극에선 기생(妓生)이나 논다니를 형상화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상상의 존재로서 팔선녀는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17세기 조선의 천재 김만중이 쓴 '구운몽(九雲夢)'은 한 남자가 팔선녀를 차례로 사랑하는 장편소설이다.

한 남자가 여덟 여자를 차례로 만나 모두 아내나 첩으로 거두는 이야기다. 

전근대(前近代) 시기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하는 음란 소설이란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꿈 이야기다.


승려인 성진(性眞)이 잠시 수행을 게을리했다가, 스승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처럼 설정한 꿈속에 들어가 양소유(楊少遊)로 

태어나 여덟 여자를 취했다가 나중에 스스로 허무를 깨닫는 순간, 그 꿈에서 깨어나는 이야기다. 

환상 문학의 고전으로 꼽힐 만하다. 게다가 인생은 일장춘몽이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유교와 불교, 도교가 잘 어우러진 

소설이란 점에서 17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이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는 평도 있다.


옛날엔 주인공 남자의 깨달음에 바탕을 두고 이 소설의 주제를 공(空) 사상에 두는 게 국문학계의 통설이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자들의 세대도 바뀌면서 해석의 초점이 팔선녀로 모이는 변화를 보여줬다. 

굳이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팔선녀 처지에서 읽으면, '구운몽'의 묘미를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이 소설에서 팔선녀는 미모와 재기(才氣)를 두루 갖춘 여성들이다. 

원래 천상의 선녀였으나, 승려 성진 앞에 나타나 희롱하며 마음을 어지럽혔다는 죄로 지상에 떨어져 차례로 양소유를 만난다.

팔선녀 중 첫 번째로 양소유 앞에 등장하는 진채봉은 시를 통해 인연을 맺는다. 

양소유가 진채봉의 집 앞에 선 버드나무를 시로 읊자, 진채봉은 거기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보낸다. 

여성이 남성을 선택해 사랑의 물꼬를 트니 남자가 풍덩 뛰어든 셈이다. 

17세기엔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다.


두 번째로 등장한 선녀는 기생이 된 계섬월이다. 계모 밑에서 자라다 기생집에 팔렸다고 한다. 

그런데 문사(文士)들 사이에서 '시를 보는 안목이 기묘하고 신령스러워 귀신과 같다'는 평을 듣는다. 

그녀는 양소유의 시를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해 잠자리를 함께한 뒤 팔선녀 중 하나인 또 다른 기생 적경홍을 소개한다. 

그녀는 놀랍게도 "기생만이 영웅호걸과 만나 수작하니, 기생이 되면 뛰어난 재주와 좋은 품성을 가진 남자를 어찌 못 

얻으리" 하며 스스로 기생이 됐다고 한다. 현대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파격적인 여성 캐릭터가 아닌가.


양소유는 과거(科擧)를 보기 전에 명문가의 딸인 정경패의 소문을 듣곤 여자로 분장해 몰래 그녀를 만난다. 

그는 과거에 급제해 정경패를 아내로 맞게 된다. 그러나 정경패는 만만한 여자가 아니다. 

남편이 여장해서 자신을 속인 적이 있으니, 거기에 걸맞게 남편을 속이려고 꾀를 낸다. 

양소유는 그런 아내의 꾐에 빠져 처녀 귀신과 연애하게 된다. 

연극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의 진실을 관객은 모두 아는데, 주인공만 모르는 극적 아이러니를 생각해보시라. 

김만중은 유머 감각도 탁월한 작가였다. 아무튼 이런 귀신 소동을 거쳐 양소유는 아내와 첩을 얻는다. 

축첩이 가능한 가부장제를 그린 듯한데, 가부장이 철저히 희롱당한다는 이중 구조를 지니고 있다.


양소유는 공주도 아내로 얻고, 용왕의 딸을 비롯해 나머지 선녀들도 다시 만나 일가를 이룬다. 

두 명은 본처로 삼고 나머지는 첩이 돼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산다. 

이를 두고 축첩을 당연시한 전근대가 여성에게 강요한 환상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런데 '구운몽'의 팔선녀는 '삼국지'의 사나이들처럼 뭉쳤다. 

세속의 신분이 공주에서 기생에 이르기까지 달랐지만 "근본을 찾으면 어찌 다름이 있으리"라며 자매가 되기로 한다. 

17세기 조선 사회에서 여성 공동체의 평등 의식을 설파한 것이다. 

팔선녀 역시 꿈에서 깨어난 뒤 비구니가 되고, "보살의 큰 도를 얻어 성진과 함께 극락세계로 간다"며 '구운몽'은 끝난다. 

팔선녀는 한국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개성이 강한 여성상을 보여준다. 

전근대의 한계 속에서도 자유분방하고 주체적이면서 평등 의식도 강한 여성을 그렸다.


그러나 최근 항간에 떠돈 팔선녀 소문은 재미는 있지만 의미도, 감동도 없다. 

헛소문이라면, 오늘날 대중의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팔선녀 소문은 특권층을 향한 비판과 시샘을 반영한 구비 문학인 셈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진정으로 팔선녀를 믿고 싶다면 '구운몽'을 읽어보시라고 권한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이란 사람들이 최근 '다시' 읽고 있다고 남에게 말하는 책"이라고 했다. 

그렇게 궁색한 변명을 하더라도 '처음' 뒤늦게 고전을 읽어보면 결코 후회하진 않는다.



구운몽에서 온 별그대?


(조선일보 2016.10.13 정상혁 기자)


獨 함부르크대 교수 바바라 왈 

"드라마 '별그대', '구운몽' 패러디… 인물·모티프 등 유사성 많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사진〉는 명백히 조선시대 고전소설 '구운몽'을 

차용한 것이다."


4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한국 고전문학과 한류 드라마를 연결 짓는 시도가 

등장했다. 독일 함부르크대 교수이자 번역가인 바바라 왈(38)은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15회 한국 문학 번역출판 국제워크숍'을 위해 "한국 고전문학에 대한 

지식이 한류 팬들의 추가적 활력소가 돼 시청 경험을 증대할 수 있다"는 

발제문을 발표했다.


먼저 인물의 유사성. 불교의 극락세계에 살고 있지만 속세의 부귀영화를 꿈꾸는 '구운몽' 양소유와 지구에 연구 목적으로 

UFO를 타고 온 '별그대' 주인공 도민준에 대해 "둘 다 준수한 외모에 팔방미인"이라며 "17세기와 21세기의 이상향을 

구현해내는 캐릭터"라고 짚었다.


다음은 구조적 유사성. 양소유와 도민준 모두 천상계에서 

인간계로 떨어졌고, 공통 이유도 '호기심'이다. 

바바라는 "두 작품에서 꿈의 모티프는 다양한 차원으로 

제시되는데, 몽환적 꿈 외에도 예지몽을 경험한다"고 

지적했다. 

양소유가 손수 연주하는 침울한 음악은 꿈의 종말을 

암시하고, 드라마 후반부인 19회에서 여주인공 

천송이의 대사 "우리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야" 

역시 마찬가지다. 

"꿈과 현실은 하나"라는 육관대사의 설명 역시 

이런 현실-꿈-현실 구조를 공고히 한다.


그간 한류 수출의 성공 요인으로 '문화적 무취(無臭)'가 꼽혀 왔었다. 

하지만 바바라"문화적 무취는 성공적 수출의 전제조건이나 문화적 특성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해석 가능한 이국적 요소가 깔리면 큰 호기심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대중문화의 이해를 위해서라도 한국 고전문학의 번역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