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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월드' 개막… 민주주의 몰락인가 위선에 대한 반란인가

바람아님 2016. 11. 13. 10:24

(조선일보 2016.11.12 이응준 소설가)


이민·외교·경제 등 17가지 이슈, 입장과 포부 정리한 '대선 출사표'
현실주의자 렌즈로 세상 바라봐

막말꾼·인종차별주의 폄하보다 혐오와 공포 없는 냉정한 판단을

'불구가 된 미국: 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불구가 된 미국: 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도널드 트럼프 지음|김태훈 옮김|이레미디어|296쪽|1만5000원

진정한 두려움이란 눈앞에 서 있는 괴물이 아니다. 
'위력으로 육박해오기는 하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막강한 상대에게 
적개심을 가져야만 할 때 우리는 가장 거대한 불안에 시달린다. 이것이 곧 공포의 요체고, 
그래서 뛰어난 공포영화는 괴물의 모습이 아니라 빛과 어둠과 소리를 이용하는 법이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의 두려움에 걸려버린 인간은 빗자루를 도깨비로 착각해 밤새 그놈과 씨름을 
하는 것처럼 헛것들에 놀아난다. 이러한 상태를 지식으로 부정하면서 극복한 결과가 과학이라면, 
지혜로 어루만지면서 평안을 추구한 깨우침이 종교일 게다. 
종교는 일종의 승화된 공포물인 셈이다. 
그리고 근대 민주정치란 세상사의 그 눈먼 두려움을 안정된 현실로 되돌려 놓으려는 제3의 길일 것이다.

전 세계가 가위눌리고 있다. 
소련이 사라진 세계 질서의 유일 지배자 미국(G2란 개념은 과장이 아니라 거짓이다)의 차기 대통령이 미치광이 막말꾼, 
극우 파시스트 인종차별주의자, 자유무역과 군사동맹을 저버리는 고립주의자, 핵무기와 전쟁마저 거래할 역겨운 장사꾼, 
인류 번영과 호혜 평등의 가치 파괴자,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음담패설도 모자라 포르노 영화 단역 출연에 성폭력까지 
일삼는 천하잡놈(뭐 또 없나?), 하여간 기타 등등 사상 최악의 인간말종이라는 비난들이 있는 것이고, 
2016년 11월 9일부로 이러한 혐오가 버젓이 두려움으로 둔갑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특별히 대한민국은 과연 지금의 두려움이 온당한지부터 면밀히 따져봐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정말 불이 꺼져 있어서 어두운 것일까? 방 안의 불빛은 애초부터 환한데 우리가 스스로 눈을 꼭 감은 채 
어둡다고 소리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은 한참 전에 공부하고 준비했어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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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기자
제45대 미합중국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출사표 '불구가 된 미국'은 바로 그런 문제 제기에 대한 실마리다. 
이 책은 트럼프 선거캠프의 슬로건인 '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인가'를 부제로 달면서 총 17개 장에 걸쳐 
정치·언론, 이민정책, 의료보험, 경제, 외교, 사회간접자본, 중동정책, 교육, 에너지, 세법, 총기 소유, 기후정책, 미국의 
전통가치 등을 기술하고 있다. 
일체의 편견을 배제한 채 오로지 서평의 본분으로 평하자면, '불구가 된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입장과 포부를 
쉬운 문장으로 요약해놓은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에 새로운 보수정당이 나타나 이 책을 벤치마킹해 정책집을 만들어도 좋을 정도다.

100개가 넘는 보험청구 항목들과 8만 쪽에 달하는 세법 서류에 괴롭힘당하며 간호사보다 회계사를 더 많이 두어야 하는 
의사와 별 혜택도 없이 점점 더 비싼 비용만 치르는 "국민들은 오바마케어의 실체를 정확하게 모른다"라고 
오바마 정부의 '천사표 관료주의'를 고발하는 트럼프는 전형적인 리얼리스트다. 
이런 면모의 원형은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먼 나라 얘기인 총기 규제에 관한 트럼프의 견해에서 오히려 잘 추출된다.

이응준 소설가
이응준 소설가
트럼프에게 완전한 총기 규제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주의에 불과하다. 
만약 온 국민의 총기 소유를 금지한다면 범죄자들만이 불법적인 경로로 구입한 총을 들고 
설칠 것이기에 트럼프의 공략지점은 황당한 '당위'가 아니라 냉정한 '현상'에 있는 것이다. 
그는 정신보건 체계를 바로잡고 중범죄자들로부터 총기를 집중적으로 격리시키며 폭력범죄를 
엄단하는 조치 등에 민주당 정권이 게을렀다고 질타한다. 
또한 그가 인용하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州)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 수정조항 2조의 철학은 왕과 귀족이 싫어서 
유럽에서 넘어온 평민들이 세운 최초의 근대국가 미국의 뿌리를 환기시킨다. 
세상을 대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우리가 트럼프를 대할 적에도 절실하다. 한마디로 현실주의다. 
그는 아웃사이더로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 미국 기득권의 대부분을 격파시키며 부조리극이 
필요했던 괴물이다. 우리가 정파적이나 취향적으로 누구를 증오하고 폄하하는 것과 
그 누구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다른 사안이다.

게다가 그가 세계 최고의 권력자인 경우에는 더더욱. '트럼프 월드'의 개막이 민주주의의 몰락인지, 
아니면 위선과 부패에 골병든 제국을 치유하는 민주주의 혁명이었는지는 멀리 두고 봐야 할 필요가 충분하다. 
전쟁은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이상주의자가 일으키는 법이다. 
자고로 미국의 큰 전쟁들은 민주당이 일으키고 공화당이 마무리했다. 
이제 눈을 밝게 뜨고 어쨌든 우리에게 중요하게 된 저 괴물이 아닌 한 인간과 현실주의 국제정치에 입각해 대화를 나누자. 
우리는 어리석은 겁쟁이가 되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