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2016.08.21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100년이 넘은 가솔린 엔진 기반의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대체하겠다는 테슬라사의 일론 머스크
(Elon Musk).
화성 탐사를 꿈꾸는 ‘스페이스 X(Space X)’, 그리고 초고속 미래 이동수단인 하이퍼 룹(Hyperloop)
역시 그의 아이디어이니 실리콘 밸리 최고의 혁신가라는 명성을 누릴 만하다.
그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미래 인류가 가상 세계가 아닌 진짜 현실에서 살 확률은 10억분의 1에
불과하다”라는 이야기를 해 화제가 되고있다.
대부분 국내 언론에서는 머스크의 주장을 앞으로 가상현실, 증강현실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상에서 일과 여가를 즐길 것이라는 ‘건전한’ 예측으로 이해하는 듯 하다.
하지만 머스크의 주장은 사실 훨씬 더 충격적이다.
머스크의 원본 인터뷰에는 ‘미래 인류’라는 단어가 없다. 원본은 이렇다.
“The chance we are not living in a computer simulation is one in billion.
우리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살고 있지 않을 확률이 10억분의 1이다.”
결국 우린 아마도 ‘이미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서 살고 있다’라는 말이다.
알프스 산맥, 대한민국, 우리 부모님, 그리고 나 자신까지⋯.
모두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니! 머스크가 드디어 미쳐버린 걸까?
머스크는 사실 옥스포드 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닉 보스트럼(Nick Bostrom)의 이론을 반복했을 뿐이다.
보스트럼 교수의 주장이 이렇다.
1) 기술적 한계 때문에 아직은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많은 컴퓨터 시뮬레이션들을 돌리고 있다.
2) 먼 미래(1,000년, 10,000년 후를 생각해 보자!)에는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수준의 완벽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3) 진짜 현실은 단 하나지만, 시뮬레이션된 현실은 무한으로 다양할 수 있다.
4) 우리는 우연의 결과와 우리의 동의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5) 우리가 태어난 현실이 우연히 단 하나인 진짜 현실일 확률보다 수 많은 시뮬레이션 중 하나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고로,
6)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이 컴퓨터시뮬레이션이 아닐 확률이 수 십억 분의 하나라는 논리적 결론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현실이 누군가의 시뮬레이션일 수 도 있다는 가능성.
영화 ‘매트릭스’가 개봉되기 50년 전, 아르헨티나 대표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픽션들》에서의
단편 중 하나인 <원형의 폐허들>에서 이미 소개한다.
주인공은 꿈을 꾼다.
꿈에서의 현실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꿈에서의 인물들은 본인이 주인공의 꿈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매번 주인공은 꿈에서 깨고, 꿈에서의 현실은 사라진다.
그러던 어느 날, 폐허가 된 원형의 신전에 불이 나고 주인공은 불 속에 갇혀버린다. 피부와
뼈를 녹여버릴 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두려워하는 주인공은 하지만 놀라운 발견을 한다.
아픔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은 채 불 속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주인공은 자신 역시 결국
누군가의 꿈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생의 모든 두려움과 아픔, 그리움과 사랑,
기억과 욕망 모두 허상이었다는 사실.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절망해야 할까?
현실과 허상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는 오늘날, 다시 한번 보르헤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볼 만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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