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18.03.30. 23:10
봄기운이 본격적으로 느껴지는 때이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도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이지만, 매화는 가장 빨리 봄을 알려서 봄의 전령사라 불리기도 한다. 광양이나 하동과 같은 남도 지역에는 새하얀 눈꽃이 가득한 섬진강변 매화 마을을 중심으로 해마다 매화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경남 양산 원동과 통도사 일대의 매화도 유명하다. 매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는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피는 ‘동매(冬梅)’, 눈 속에 피는 ‘설중매(雪中梅)’라 하고, 색에 따라 흰색이면 ‘백매(白梅)’, 붉으면 ‘홍매(紅梅)’라 부른다. 매화나무의 열매인 매실은 매실주와 건강에 좋은 음료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조선 전기의 학자 강희안(姜希顔·1418~1465)이 꽃과 나무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매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매화는 천하에 으뜸가는 꽃이니, 지혜롭거나 어리석거나 간에 누구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원예를 배우는 선비는 반드시 매화 심는 것을 먼저 하니 많은 것을 지겨워하지 않는다.” 이어서 “매화는 운치가 빼어나고 격조가 높다. 이 때문에 비스듬히 누워 성글고 수척한 것과 늙은 가지가 기괴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 기록하고 있다. 매화의 별칭에 대해서는 청객(淸客·맑은 손님), 청우(淸友·맑은 벗), 빙옥처사(氷玉處士·얼음과 옥처럼 맑은 처사) 등이 있음을 소개했다. 난초, 국화,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불렸던 만큼 조선시대 학자들 역시 매화를 사랑했다.
매화에 대해 깊은 애정을 보였던 학자로는 퇴계 이황(李滉·1501~1570)과 남명 조식(曺植·1501~1572)을 들 수 있다. 이황과 조식은 1501년 동년에 태어나 당대에는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으로 지칭됐던 인물이다. 당시에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라 칭했는데. 이황은 경상좌도인 안동과 예안을 중심으로, 조식은 산청을 중심으로 학문 활동을 해, ‘좌퇴계 우남명’으로 불렸다. 이황은 후학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에 매화나무를 여러 그루 심었고, 매화와 관련된 시도 많이 남겼다.
조식이 말년에 후학을 가르친 지리산의 산천재(山天齋) 앞에도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다. 조식이 심었다고 해서 ‘남명매’라 불리며, 덕천강변 양지바른 곳에 있다. 해마다 3월 말이면 연한 분홍빛이 도는 반겹 꽃이 가득히 피는데, 향기가 지극히 맑다. 평생을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처사로 살아가면서, 조선의 참선비로 존경을 받았던 조식의 모습과 매화가 잘 어울려 보인다. 산천재와 남명매 인근에는 단속사(斷俗寺)라는 절터가 있는데, 이곳에는 고려말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강회백(姜淮伯)이 심었다는 수령 600년이 넘는 ‘정당매’가 있다. 조식은 ‘단속사 정당매’라는 시에서, 강회백이 고려와 조선 두 왕조에 벼슬을 한 것이 매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겨울의 추위를 극복하고 봄을 알리는 꽃과 향기를 피웠던 매화. 조선의 선비들이 유독 사랑했던 매화를 찾아보며, 매화와 함께했던 그들의 모습까지 만나보기를 바란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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