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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일본 대부업계 전설이 한국 경제를 평가한다면

바람아님 2018. 12. 1. 07:33
중앙일보 2018.11.30. 00:34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일본 대부업계의 전설로 꼽히는 고(故) 다케이 야스오 ‘다케후지(武富士)’ 회장은 직장인·주부 등을 대상으로 ‘돈놀이’를 하며 일본 최대 부호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가 돈을 꿔주는 기준은 독특했다. 직접 집을 방문해 빨래가 촘촘히 걸려 있고,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으면 ‘이 주부는 살림에 애착을 가지고 있으니 돈을 꼭 갚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대로 주부의 손에 반지나 팔찌가 주렁주렁 걸려 있으면 사치를 즐긴다고 보고 돈을 잘 빌려주지 않았다.


과거 금융권을 출입할 때도 비슷한 사례를 경험했다. 한 중소벤처기업 담당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업 탐방을 가면 반드시 구내식당과 화장실을 둘러봤다. 그는 직원의 충성도를 회사 성장의 주요 잣대로 삼았는데, 구내식당 밥맛이 형편없거나 화장실이 더러우면 이직률이 높다고 했다. 한 은행의 기업 대출 담당 심사역은 거래 업체를 방문할 때 우편물·신문이 쌓여 있거나 안내 데스크 직원이 자리를 자주 비우면 경영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물론 기업을 판단하는 최우선 기준은 기업의 실적과 재무상태·수익성이다. 하지만 베테랑들은 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체화된 이런 암묵지(暗默知)를 이용해 때론 숫자 뒤에 숨어 있는 부실을 찾아내곤 한다.

최근 한국은 직접적으로 ‘불황’을 가르치진 않지만, 가볍게 볼 수 없는 경제 지표 변화가 눈에 띈다. 다케이 회장이 국가 신용도를 평가하는 국제기관에서 일했다면 불황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다가온다고 판단할 만한 전조들이다. 우선 장·단기 금리 차이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통상 채권 시장에서 장기 금리는 단기보다 높다. 돈을 빌려줄 때 기간이 길수록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시장이 향후 경기 전망을 어둡게 보면 장기 금리가 단기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진다.


보험 해약의 증가도 불길한 지표다. 가입자가 손해를 보는데도 보험을 깬다는 것은 가계가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음을 뜻한다. 카드론과 약관대출(보험금을 담보로 대출받는 것)도 늘고 있다. 급전이 필요하지만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운 저신용자가 고금리를 감수하고 제2금융권에 손을 벌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신력 높은 기관의 시선도 아래를 향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향후 경기 전망을 나타내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장기간 내림세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기존에 제시한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모조리 하향 조정했다. 한국은 벌써 불황 국면에 접어들었는데도 정부만 “나쁘지 않다”고 오판해 위기를 키워 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


손해용 경제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