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2.01 이한수 기자)
소리의 탄생 - 소리와 듣기에 대한 폭넓은 역사적 탐험
데이비드 헨디 지음|배현·한정연 옮김|시공사|436쪽|1만8000원
소리를 주제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역사를 서술한다.
형태도 없고 기록하기도 어려운 소리를 소재로 인류사를 쓰는 일이 가능할까.
영국 서식스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전공 교수인 저자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성공했다.
인류는 소리를 통해 문명을 시작했다.
선사시대 사람이 살던 동굴에 들어서면 칠흑 같은 어둠이 닥치고 외부 소리가 단절되지만,
자신이 내는 소리는 증폭되며 크게 울린다. 피레네산맥의 니오 동굴에 있는 동물 그림은
입구에서 770m 지점에 밀집해 있다. 음향이 풍성하게 공명하는 '로마네스크 성당' 같은 지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소리를 기억하는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고대 인도의 힌두교 경전 '베다'나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드' 같은 문학은 오랫동안 암송을 통해서 전해졌다.
플라톤은 "모두 글쓰기를 알게 되면 기억력을 발휘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리는 계급과 신분을 나누는 기준이기도 하다.
평범한 로마 시민은 벽이 얇은 공동 주택에 거주하면서 도시에서 나는 소음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반면 부유한 상류층은 소음이 통제된 지역의 고급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아시아·아프리카 원주민은 유럽 식민 지배자가 낸 총소리를 처음 들었고,
산업혁명기 공장 노동자들은 기계 굉음 소리에 심각한 청각 손상을 입었다.
책을 읽다 보면 인류는 소리를 통해 주위 세계를 인지하고, 권력관계를 만들고,
종교와 문명을 일궈왔다는 사실을 절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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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탄생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역사 속에는 배경음악처럼 ‘소리’가 깔려 있었다. 새가 우짖고 숲이 바스락대던 야생의 소리, 고대 도시의 비좁은 거리를 채운 떠들썩한 말소리,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를 향해 쏟아지던 관중의 환호성, 귀족의 비밀을 엿듣는 하인의 숨죽인 발소리, 아프리카 노예들이 빼앗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던 노래,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곁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기계음과 자동차 경적 소리, 전쟁의 참혹한 비명 소리와 폭발음, 오늘날 우리가 다시 갈망하게 된 고요함과 침묵까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무음’의 세계를 상상해보라.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바람에 달그랑 흔들리는 풍경 소리도,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세상. 아마 세상이 온통 무채색으로 보일 터이다. 소리는 인류의 역사를 다채롭고 풍성하게 채색해왔다. 신간 《소리의 탄생(원제: Noise)》에서는 인류사라는 대서사뿐만 아니라, 소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 속의 세밀하고도 내밀한 측면까지 살펴본다. 왜 소리에 주목해야 하는가?
소리는 흔히 비논리적이며 마법적이고 미신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문자에 비해 소리가 믿을 만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리는 인류의 첫 울음소리와 함께 태어나, 수만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형태가 없고 쉽게 빠져나간다는 그 특성 때문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을 뿐더러, 소리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가 쉽지 않았을 뿐이다.
서로 의사소통을 했다. 또한 발을 구르거나 북을 치고 휘파람을 부는 등, 자기 부족만의 소리와 리듬을 바탕으로 똘똘 뭉쳐 사냥을 했고 다른 부족과 전투를 벌였다. 아프리카의 북 언어를 처음 만난 서구인들은 이것이 지옥으로 떨어질 만한 이교도의 관습이거나 야만적인 뜻을 담고 있으리라고 생각해, 무시하거나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헨디David Hendy 교수는 이러한 수만 년 전의 리듬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우리가 만드는 소리에 보편적이고도 깊게 뿌리내린 특징이라고 말한다.
고대 로마에도 북적거리고 활기 있는 도시의 소음이 존재했다. 길에서는 배달 수레가 요란하게 지나가고 가축 떼가 울어댔을 것이며 시장이나 사창가에서는 호객 행위로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당시 평범한 로마인들은 벽이 종잇장마냥 얇은 공동주택에 거주했으므로 사생활은 없다시피 했으며, 이웃은 고사하고 자기 식구가 내는 소음을 막을 수단도 없었다. 물론 부유한 상류층은 소음을 피해 고급 단독주택이나 통제된 구역에 들어앉아 고요함을 즐겼다.
아마 교회나 수도원, 사원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였을 것이다. 종은 교회, 사원, 수도원 등이 힘을 과시하고 자기 영역을 규정하며 온 동네 주민의 행동을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지역사회 전체의 시계 노릇도 했다. 교회나 사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합창하는 소리나 기도하는 소리 등 또 다른 소리를 마주하게 되었다. 또한 성인 축일이나 예수승천 대축일, 오순절 등 교회력에 지정된 특별한 날이 되면 필시 서유럽 전역의 교구 교회 수천 곳에는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축제를 벌이는 소리가 넘쳤으리라.
성별 간, 계급 간, 인종 간에도 각종 투쟁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다른 소리 세상이 생겼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빈민들의 삶의 터전에서는 생활 소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진 반면, 부자들은 사생활과 평온함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자신들을 격리함으로써 빈민들과 거리를 두었다. 삶의 터전을 빼앗긴 원주민의 귀는 북소리, 나팔 소리, 종소리, 유럽 식민지배자가 쏘는 총소리에 시달렸다. 지배자들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 소리를 듣게 할 권리를 마음대로 휘둘렀다. 비슷한 이유로 노예주는 노예들이 마음대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게 했다. 전쟁터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포탄 소리에 늘 귀가 먹먹했고, 때로는 정신병을 얻었으며, 산업혁명기에는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이 기계의 굉음 때문에 청각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소리, 서로 바쁘다고 말하는 듯한 경적 소리, 라디오나 텔레비전 소리, 옆 테이블의 대화 소리, 고요한 사무실에 울리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최근에는 오히려 ‘소리 없음’, 즉 고요함과 침묵을 찾아 명상 센터나 템플스테이, 다도 체험 등을 찾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우리는 소리 속에 살고 있으며, 소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다. 소리는 그렇게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인류와 함께 흘러온 것이다. 인류는 수만 년 동안 소리를 이용해 주위 세상을 인지했고 인간관계를 만들거나 권력 지도를 그렸으며 종교와 문화라는 문명을 일궈냈다. 또는 축제에 빠져들거나 음악에 몸을 맡기고 그저 즐기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는 문자를 통해서만 기록된 것이 아니며, 우리가 과거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과거 인류의 삶과 역사를 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소리와 듣기의 사회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출판사 서평 닫기
소리의 역사를 추적하는 작업은 곧 인류가 어떻게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는지, 그리고 어쩌면 인류가 어떻게 자연을 통제하려고까지 했는지를 이야기하는 작업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과 어떻게 소통하고 서로 이해하고 공존하는 법을 익혔는지, 어떻게 서로를 지배하려고 싸웠는지, 어떻게 갈수록 바빠지는 세상에서 사생활을 모색했는지, 어떻게 감정을 다스리고 제정신을 유지하려 분투했는지를 이야기하는 작업이다. 소리의 역사는 고대 로마에서 관중이 격렬하게 내지르는 함성, 중세 부자와 빈자 간의 권력투쟁, 산업화에 따른 긴장, 전쟁이 미친 충격, 도시의 대두, 언론매체가 하루 24시간 쏟아내는 지껄임 등등을 아우른다. 이 모든 것들을 훑어가면서 우리는 인류 역사의 대서사뿐만 아니라 그 속의 내밀한 측면에도 줄곧 귀를 기울이게 된다. - 머리말 p.12 우리가 인류의 연대표를 나누는 방법 중 하나는 과거를 현재보다 마법적인 ‘구전’의 시대로, 현재를 과거보다 이성적인 ‘문자’의 시대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사실상 청각 문화(듣기)와 시각 문화(보기와 읽기)를 구분한다. 더 나아가, 읽기가 주도권을 잡은 뒤로는 시각이 더 종합적이고 신뢰할 만한 감각으로 간주된 반면 청각은 수동성, 미신, 풍문 등과 결부된 채 뒤처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 흔히 시간이 흐르면서 시각이 승리하고 청각은 격하되었다고 간주하면서, 이제는 듣기가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다든가, 듣기란 소극적 행위라든가, 본 것이 들은 것보다 증거로서 더 낫다든가, 서양에서 발생한 현상이 동양에서도 똑같이 발생했다고들 짐작한다. 그러나 이런 짐작이 과연 옳은지 속속들이 따져보아야 마땅하다. 소리와 듣기의 사회사는 그런 짐작이 틀렸다는 사실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 머리말 pp.15~16 통신 기술의 발달이 우리를 더 가깝게 해준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곳 샬럿스퀘어를 비롯해 당김줄이나 벙어리 웨이터를 설치한 수많은 주택에서, 기술은 오히려 사람들을 서로 멀리 떨어뜨리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하인들을 더 이상 문간이나 복도에서 서성거리게 할 필요가 없었다. 주인 가족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 자리에 격리했다가 필요할 때 불러내면 그만이었다. 라몬트 일가 같은 사람들에게는 비로소 사생활이 보장되었다. 누구도 엿듣지 않는 가정생활을 꾸릴 기회를 제대로 거머쥔 것이다.
잃었다. 상대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들린다는 것을 앎으로써 인간은 불안해하기보다는 안심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신뢰할 수 있다. (…) 사람들이 부근을 오가는 소음, 설핏 들려온 대화, 심지어 뒷공론까지도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해주는 배경음 노릇을 한다. 역으로, 사람은 가청거리에서 벗어나면 남들과도 멀어져 고립되고, 외면당하고, 오해를 산다. - 4장_권력과 반란, ‘18. 주인과 하인’ pp.230~231 북 치기가 위험하다고 최초로 경고한 사람들은 16세기부터 가나, 나이지리아, 앙골라, 콩고 등지에 정착한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한 선교사는 “지옥 같은” 북이 “불법인 잔치와 유흥에서 흔히 사용된다.”라고 기록했다. (…) 선교사들은 뿔피리나 북 연주자들이 왕과 궁정에 연관되어 있음을 잘 알았으므로, 북을 두드리는 리듬이 모종의 군사 신호를 포함한다고 의심했다.
시끄러운 악기를 사용하거나 보유하지 못하도록 금하여, 그들이 사악한 계획이나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서로를 부르거나 신호를 보내거나 통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래스가 지적하듯, 이 법이 1740년에 새로 도입되자 “노예가 북을 친다는 언급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조지아주의 식민지 기록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 4장_권력과 반란, ‘19. 노예들의 반란’ pp.238~239 옛날에 사람들은 노동요를 부름으로써 밭 갈기, 고기 잡기, 옷감 잣기 등등 각종 노동의 리듬을 인체의 리듬, 즉 숨을 쉬고 몸을 굽히고 손발을 움직이는 리듬에 맞추곤 했다. 이런 노래 덕에 일은 견딜 만해졌고 일꾼들에게는 서로에 대해 노래를 부르거나 마을 괴짜들에 대해 농담을 하거나 심심풀이 삼아 중매를 설 기회가 주어졌다. 노동이 진행되는 속도는 자연 조건과 현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귀를 찌르듯 윙윙대며 돌아가는 탈곡기” 앞에 “말없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계음이 너무나 시끄러워서 노래하거나 수다를 떨기는 불가능해졌고, 자연의 리듬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효율이 요구되면서 노동자는 자신을 기계에 맞추어야만 했다. - 5장_ 기계의 부상, ‘21 산업혁명의 소음’ p.269 우리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표면에 드러나는 현상 너머를 통찰하고 다른 이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과거 인류도 소리에 담긴 미묘한 의미를 해석함으로써 기분을 조절하거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잇는 데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도움을 받았다. 귀로 듣고 이해한 세상은 눈으로만 보고 이해한 세상과는 판이할 수밖에 없다. 귀를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과거 인류의 삶을 주관적인 측면으로나 사회적인 측면으로나 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다. - 맺음말 p.388 --- 본문 중에서 [예스24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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