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목을 매달아 사람을 죽였다. 그 발치에 앉은 군인이 천연덕스럽게 시체를 바라본다. 잘 만들어진 미술품을 감상하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이는 스페인 최고의 궁정화가였던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1746~1828)가 1810년에서 20년 사이에 제작한 판화 앨범, '전쟁의 참화' 중 한 장면이다. 82점의 판화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고야는 전쟁이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물론 과거에도 전쟁을 그린 그림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실제로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르는 참혹한 전쟁의 실체를 묘사한 건 고야가 처음이다.
- 프란시스코 고야, 궨전쟁의 참화궩 중 36번 판화 - 1812~1815년,
- 에칭과 아쿠아틴트, 15.8×20㎝. /스페인 국립도서관 소장
그는 시체에 난도질을 해대는 사람들, 기아 속에 허덕이는 아이들,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반복해서 그렸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이성을 잃었을 때 할 수 있는 일, 증오와 복수심이 세상을 지배할 때 발생하는 일들이다. 물론 '전쟁의 참화'는 고야의 생전에는 출판될 수 없었고, 그의 사후 35년이 지난 후에야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그림으로만 봐도 끔찍한 것, 그것이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