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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어둠의 시대가 우리를 증명한다

바람아님 2020. 3. 20. 09:24

(조선일보 2020.03.20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현 집권세력 무능과 무책임… 온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어
우리가 버텨내는 건 시민의식·의료계 헌신 덕분
코로나19가 역설적 진실 웅변… 암흑의 시대를 격파하는 궁극적 힘은 시민에게서 나온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코로나19가 유럽 대륙을 강타했다.

이탈리아에선 중환자들이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매일 수백명씩 사망한다.

확진자 폭증으로 의료 체계가 붕괴했다. G7 선진국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재앙이다.

프랑스·독일·영국·미국도 위태롭다. 일개 전염병이 문명 세계를 초토화하고 있다.

인류 전체 위기이자 거대한 자연의 복수가 아닐 수 없다.

어둠의 시대가 인간의 삶과 일상을 파괴하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재난과의 싸움을 버텨낸다. 재난(disaster)은 '별(astro)이 없는(dis)' 상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게 재난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의 정책 실패가 부른 마스크 대란 속에서도 묵묵히 몇 시간 동안 줄을 선다.

성숙한 시민 의식이 암흑의 시대를 뚫고 별처럼 빛난다.

생필품 사재기 광풍이 몰아치는 유럽·미국과 차분한 한국 사회는 너무나 다르다.

코로나 사태라는 '재난 디스토피아'의 최대 피해자인 대구·경북 주민들의 절제가 돋보인다.

재난 디스토피아의 한가운데서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이 전국적으로 분출한다.

재난 디스토피아에서 역설적으로 '재난 유토피아'가 창조되는 기적의 순간이다.


재난 유토피아를 가능케 한 건 시민 의식과 의료인들의 헌신이다.

사명감으로 무장한 의료인들의 사투(死鬪)가 코로나 치명률을 크게 줄였다.

장시간 마스크 착용으로 생긴 얼굴 상처를 가린 붕대에도 맑게 웃는 간호사들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박정희 정부가 시작하고 김대중 정부가 완성한 전(全) 국민 의료보험제도와, 사스·메르스 사태와 싸우면서 닦은

방역 전문가들의 능력이 결정적이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마자 진단 키트 생산에 나선 우리 의료벤처기업의 순발력도 놀랍다.

코로나 전쟁을 우리가 감당해내는 건 성숙한 시민 의식과 의료계·민간기업이 축적한 시민사회의 역량 덕분이다.

한국 사회 전체가 합심해 쌓은 피와 땀의 힘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난 유토피아를 만드는 사회 시스템을 건설하는 데 기여하지 않았다.


대통령·청와대·복지부 장관 등 권력 최상층부의 위기 관리 능력 부재는 경악스러울 정도다.

대만·싱가포르·홍콩은 중국과 운명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사태 초기 단호한 억제 조치로 코로나 확산을 줄였다.

국가 리더십의 결단이 나라와 국민을 살렸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의 정략과 오판은 온 국민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었다. 정치권은 위기를 빌미로 이권만 탐낸다.

여야 위성 비례 정당이 정치를 아사리판으로 만들고 있다.

국민 생명과 국익을 저버린 정치 지도자들은 민주공화국의 배신자다.


관군이 망친 나라를 의병(義兵)이 구하는 게 우리 역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땐 철면피한 왕과 당쟁으로 서로를 죽인 정치인들이 나라를 국망(國亡)으로 몰았다.

그들에겐 국익은 빈말이고 자파(自派)의 권력 확장이 유일한 목표였다.

큰 공을 세운 김덕령·곽재우·정문부 같은 의병장을 선무공신(宣武功臣)에 기리기는커녕 당쟁 와중에 참살(慘殺)하기

일쑤였다.

코로나 전쟁에서도 문 대통령은 중대 오판과 정책 오류를 결코 시인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방역과 생활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시민들의 공(功)을 틈만 나면 자신의 몫으로

참칭(僭稱)한다. 참혹한 역사의 풍경이 반복된다.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사회 지도부는 극단적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데다 음험한 정치공학의 달인들이다.

국민을 권력 입맛에 따라 언제든지 선동과 동원이 가능한 졸(卒)로 여긴다.

그러나 민중은 왕정 때에도 용렬한 군주를 역성(易姓)혁명으로 바꿔치운 역사의 주체다.

민주공화국 시민에겐 선거야말로 민주적 역성혁명의 수단이다.

국정 운영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하인이 주인인 국민을 능멸(凌蔑)하면서 종으로 부리려 드는

난장판을 용인하면 나라의 앞날은 없다.


전염병과의 싸움은 의과학적 문제임과 동시에 중대 정치 문제다. 코로나19가 각국의 국정 능력과 협치를 시험한다.

혼용무도(昏庸無道·어둡고 어지러움)한 문재인 정권과 위대한 한국 시민은 더 이상 공명정대한 역사의 길을

동행하기 어렵다. 암흑의 시대를 격파하는 궁극의 힘은 평범한 시민에게서 온다.

한국사에서 국난을 뚫고 나간 압도적 주체는 가짜 지도부가 아니라 민초들이다.

한국인의 피와 땀과 눈물을 강요하는 코로나19가 역설적 진실을 웅변한다.

어둠의 시대가 오히려 우리를 증명한다. 바로 우리가 민주공화국의 미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9/20200319068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