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시리즈7-①박카스 아줌마의 치명적인 유혹 < 下 >
가난한 남편은 알면서도 성매매 방치
31세 젊은여인, 76세 할머니도 영업
"불편한 몸 때문에 다른 일은 하지도 못해"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그랬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정신지체 박카스 아줌마가 있다는 이야기도, 그런 아내의 성매매를 남편이 묵인하고 있다는 얘기도 모두 헛소문이 아니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이 여성의 남편이 아내의 성매매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여성은 돈의동 쪽방촌(아경 빅시리즈④ 7일자 9면)에서 남편과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경찰이 남편에게 부인의 성매매 사실을 알리자 "본인도 알고 있다"는 식으로 태연하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이 여성 이외에도 30대 박카스 아줌마는 더 있었다. 종로2가 파출소는 이 일대에서 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다가 적발된 '박카스 아줌마' 23명의 인적사항을 카드로 만들어 관리하는데 이 카드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 중에 이 여성(37) 외에도 또 다른 정신지체 1981년생(32) 여성이 한 명 더 있었다. 또 1982년생(31) 여성은 가장 나이 어린 '박카스 아줌마'로 이름이 올라 있었다.
박카스 아줌마라는 꼬리표 때문에 주변의 냉대와 멸시를 받지만 이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술 팔고 박카스 파는 아줌마들은 대부분 남편없이 혼자 애키우는 사람이야. 그러니 방법 있어? 새끼들 먹이고 입히려면 이 일이라도 해야지. 여기 오는 아줌마 중에는 자기 혈액투석 비용을 대려고 이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 종묘공원 앞에서 만난 한 박카스 아줌마의 얘기다.
또래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줌마들이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종묘공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부럽지 않느냐고 묻자 "남편 잘 만난 팔자 좋은 여편네들 부러워해서 뭐해…"라며 얼굴이 굳어진다. 하지만 자식 이야기를 꺼내자 "큰아들이 공부를 잘 한다"며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큰딸이 고3이고 아들은 대학교 3학년이란다.
아줌마는 "나야 자식들이 속을 안 썩이니 다행이지만 자식이 엄마를 외면하는 놈도 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60대 박카스 아줌마는 술을 몰래 판 벌금 통지서가 집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성매매 사실을 아들에게 들켜버렸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어머니의 성매매를 말리기는커녕 벌금통지서만 어머니에게 전해주고 돌아서서 가버리더란다.
종로3가역 지하에서 만난 한선화(70·가명·인천) 할머니는 지난 3월부터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슬하에 딸 둘,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마흔 한 살인 큰딸은 여관방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고 서른아홉인 둘째 아들은 중국인 아내와 갈라선 이후 중국에서 건설회사에 다니며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단다. 서른 두 살인 막내딸 역시 강원도 철원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식 덕 볼 생각은 진즉 버렸다. "자식들 알면 창피스럽지만 여 나와서 벌면 방세도 내고 전기세도 내고 하지 않나. 나는 지금도 부끄러버. 살 생각을 하니깐 이러는 거야." 한씨 할머니는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2만원을 내고 반지하방에 혼자 살고 있다.
세 아이를 둔 가정주부였던 할머니는 20년 전엔 서울 우면산의 D사찰에서 비구니를 모시는 보살이었다. 1991년부터 8년 동안 절밥을 먹었는데 스님이 입적하면서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2년 전 교통사고로 한 쪽 팔을 거의 못 쓰게 됐다. 먹고 살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박카스 아줌마가 됐다. 왜 하필 성매매로 밥벌이를 하느냐고 묻자 한 할머니가 갑자기 바지를 걷고 무릎에 점점이 박힌 뜸 자국을 보여준다. "너무 아파서 혼자 뜸뜬 자국이야. 팔 다리 멀쩡하면 주방에서 설거지라도 하겠어. 돈 없어서 거지꼴로 굶어죽는 것보단 낫잖아."
한씨 할머니는 이곳에서 '여사님'이라 불린다. 일종의 별명인 셈이다. 이 일대의 박카스 아줌마들은 이름 대신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거나 '안산댁', '마산댁', '천안댁' 하는 식으로 택호(宅號)를 쓰기도 한다. 한번은 동생들하고 청량리에 놀러갔는데 한 할아버지가 뒤에서 큰 소리로 '○○여사님 어데 가'라고 부르더란다. 끈질기게 불러대는 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그때부터 누가 물어보면 성도 안 가르쳐줘. 하긴 이름이고 뭐고 그저 나를 잊고 이 일을 하는 게 나아."
한씨 할머니에게 립스틱과 상의 색깔을 꽃분홍색으로 맞춘 아줌마가 다가와 알은체를 한다. 안산댁(59) 아줌마다. 안산댁 아줌마는 앞니를 비롯해 치아가 9개나 썩었다. 입을 열 때마다 듬성듬성 썩은 이가 보인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탓에 말투도 어눌하다. 안산댁 아줌마는 임대아파트의 임대료 20만원을 벌기 위해 박카스를, 몸을 판다. 딸이 둘 있다. 남편은 결혼한 지 7년 만에 간암으로 죽었다. "외로워 죽겄어. 부잣집 남자도 못 만나고. 이빨도 아픈데 돈이 어디 나서 치료를 하나"며 하소연도 늘어놓는다. 왜 이 일을 하느냐고 질문하기가 무섭게 가방을 열어 보여준다. 약봉지가 줄줄이 사탕처럼 딸려 나온다. 알약이 하나, 둘, 셋…. 총 7개다. 위장약, 허리약이란다. "몸이 다 고장났어. 애들도 정부에서 받아먹어서 키운거야.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지 뭐." 체념한 말투다.
안산댁 아줌마의 푸념을 옆에서 듣고 있는데 한씨 할머니가 기자를 툭툭 친다. "저기 영감하고 빨간옷 입은 여자 좀 봐봐." 시선을 돌리자 한 할아버지와 50대 아줌마가 지하철역 지하 기둥에 나란히 앉아있다. 주변 시선에 아랑곳 않고 할아버지에게 여성이 쪽 입을 맞추자 돈 1만원을 얼른 쥐어준다. "저 영감이 한 달에 연금이 180만원이 나오는데 입 한 번 맞추면 만원, 가슴 한 번 만지면 만원 하는 식으로 하루 7만원 나가. 저 여자는 가만히 앉아서 7만원 벌어가지고 가는거야." 은근히 부럽다는 눈치다.
"흉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들어줘." 한 할머니는 민망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추임새를 넣듯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비아그라도 팔고 그렇게 해서 1만원도 벌고 2만원도 벌고 그래. 이거 흉이라고 생각하지마' 이런식이다. 할머니는 "여기 앉아 있다 보면 사는 게 별거 없다. 인생 이래 살다 가는가 보다 싶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내 혼자서 노래를 하나 지었다." 할머니가 입을 뗀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누가 내 시체를 묻어주랴. 봄이 오면 꾀꼴새가 내 무덤에 와서 울어주랴."
다시 피카디리 극장 앞. "딸내미 때문에라도 벌어야 하는데 그럼 나와야지." 한 박카스 아줌마가 휴대전화에 대고 말을 하며 파고다공원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할머니일 그녀의 뒷모습에는 직업적인 화류 여성의 모습이 깊이 배어있어 보는 이를 씁쓸하게 했다.
◆ "여성 가난과 노인 성욕의 일그러진 결합"
"여성의 빈곤과 남성의 욕망이 만나 빚어진 일그러진 현상이다."
이호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사회복지상담학과)는 파고다 일대의 박카스 아줌마 현상을 노인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만들어진 음성적인 성문화로 정의했다.
학력이 낮고 건강하지 못한 탓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여성들이 호구지책으로 삼은 것이 '성매매'이며 나이와 상관없는 남성들의 삐딱한 성욕이 어우러지면서 빚어진 현상이 바로 이들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노년기에 접어든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 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2002년부터 박카스 아줌마를 연구한 이 교수는 "평생 전업주부로 살다가 뒤늦게 성매매 현장에 나온 분들도 적지 않다.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오로지 가난한 탓"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만약 지금처럼 박카스 아줌마 현상을 그저 종로3가만의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한다면 성병 등 보건의료학적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노인의 경우 노화가 함께 진행돼 성병인지 노화인지 구분을 못하기 때문에 성병을 옮은 남성이 가정으로 돌아가 전염시킬 우려도 높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남성 노인을 그저 '노인'으로만 보는 시각도 문제"라며 "남성의 발기부전 확률은 70대까지도 35% 밖에 되지 않으며, 80대가 돼서야 75%가 발기부전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80대 할아버지도 젊은 남성과 똑같이 성욕을 느끼고 성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아울러 이 교수는 "이런 남성의 욕망을 건강하게 배출할 창구가 필요하며 부부 성교육, 레크리에이션, 교육 활동의 장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호선 교수는
이호선 교수는 박카스 아줌마의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2008년 80여명의 박카스 아줌마들을 인터뷰했다. "너 굶어본 적 있느냐, 폐지 주워 본 적 있느냐." 인터뷰차 만난 여성들은 왜 성매매를 하느냐는 질문에 냉소했다고 한다. 실상은 경험해 보지도 않고 책상에서만 연구한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단다. 그 길로 며칠 동안 60대 여성을 따라 함께 폐지를 주워 손에 쥔 돈이 달랑 5200원. 그렇게 해서 얼굴을 튼 박카스 아줌마 10여명을 심층 인터뷰해서 두 차례에 걸쳐 논문을 발표했다. 올해 안에 3차 논문이 나올 예정이다.
1990년대 중반 인천의 집창촌에서 젊은 성매매 여성들을 인터뷰했던 이 교수는 이들과 박카스 아줌마의 차이점을 이렇게 말한다. "젊은 여성에게는 그런대로 희망이 있다. 박카스 아줌마들은 내일은 뭘 하겠다는 희망이 없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박카스 아줌마를 성매매 여성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보호하고 끄집어내야 할 존재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가난한 남편은 알면서도 성매매 방치
31세 젊은여인, 76세 할머니도 영업
"불편한 몸 때문에 다른 일은 하지도 못해"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그랬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정신지체 박카스 아줌마가 있다는 이야기도, 그런 아내의 성매매를 남편이 묵인하고 있다는 얘기도 모두 헛소문이 아니었다.
최근 종로2가 파출소에 1976년생 여성이 잡혀 들어왔다. '성매매 호객 행위' 때문이었다. 이 여성(37)은 종로3가역 2번 출구 일대를 서성이며 할아버지를 꾀어내는 '박카스 아줌마'였다. 앳된 인상의 그녀는 또래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니 말투가 어눌했다. 조사를 하던 경찰들은 아연실색했다. 여성이 정신지체장애 3급이라는 걸 알아낸 것이다. 정신지체 3급의 경우 지능지수(IQ)가 50~7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 기막힌 것은 이 여성의 남편이 아내의 성매매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여성은 돈의동 쪽방촌(아경 빅시리즈④ 7일자 9면)에서 남편과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경찰이 남편에게 부인의 성매매 사실을 알리자 "본인도 알고 있다"는 식으로 태연하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이 여성 이외에도 30대 박카스 아줌마는 더 있었다. 종로2가 파출소는 이 일대에서 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다가 적발된 '박카스 아줌마' 23명의 인적사항을 카드로 만들어 관리하는데 이 카드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 중에 이 여성(37) 외에도 또 다른 정신지체 1981년생(32) 여성이 한 명 더 있었다. 또 1982년생(31) 여성은 가장 나이 어린 '박카스 아줌마'로 이름이 올라 있었다.
경찰의 단속에 걸려든 박카스 아줌마 중엔 1937년생(76)도 있어 충격을 더했다. 경찰에 적발될 당시 이 일흔 여섯의 할머니는 68세의 '젊은' 할아버지에게 작업 중이었다고 한다. 파출소 관계자는 "이 할머니는 원래 경북 경산 출신인데 어쩌다 이리로 흘러 들어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할머니 못지않게 고령인 1944년생 할머니도 호객행위를 하다가 덜미가 잡혔다고 하니 파고다공원서 만난 할아버지가 왜 '박카스 아줌마'가 아니라 '박카스 할머니'라고 냉소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박카스 아줌마라는 꼬리표 때문에 주변의 냉대와 멸시를 받지만 이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술 팔고 박카스 파는 아줌마들은 대부분 남편없이 혼자 애키우는 사람이야. 그러니 방법 있어? 새끼들 먹이고 입히려면 이 일이라도 해야지. 여기 오는 아줌마 중에는 자기 혈액투석 비용을 대려고 이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 종묘공원 앞에서 만난 한 박카스 아줌마의 얘기다.
또래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줌마들이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종묘공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부럽지 않느냐고 묻자 "남편 잘 만난 팔자 좋은 여편네들 부러워해서 뭐해…"라며 얼굴이 굳어진다. 하지만 자식 이야기를 꺼내자 "큰아들이 공부를 잘 한다"며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큰딸이 고3이고 아들은 대학교 3학년이란다.
아줌마는 "나야 자식들이 속을 안 썩이니 다행이지만 자식이 엄마를 외면하는 놈도 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60대 박카스 아줌마는 술을 몰래 판 벌금 통지서가 집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성매매 사실을 아들에게 들켜버렸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어머니의 성매매를 말리기는커녕 벌금통지서만 어머니에게 전해주고 돌아서서 가버리더란다.
종로3가역 지하에서 만난 한선화(70·가명·인천) 할머니는 지난 3월부터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슬하에 딸 둘,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마흔 한 살인 큰딸은 여관방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고 서른아홉인 둘째 아들은 중국인 아내와 갈라선 이후 중국에서 건설회사에 다니며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단다. 서른 두 살인 막내딸 역시 강원도 철원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식 덕 볼 생각은 진즉 버렸다. "자식들 알면 창피스럽지만 여 나와서 벌면 방세도 내고 전기세도 내고 하지 않나. 나는 지금도 부끄러버. 살 생각을 하니깐 이러는 거야." 한씨 할머니는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2만원을 내고 반지하방에 혼자 살고 있다.
세 아이를 둔 가정주부였던 할머니는 20년 전엔 서울 우면산의 D사찰에서 비구니를 모시는 보살이었다. 1991년부터 8년 동안 절밥을 먹었는데 스님이 입적하면서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2년 전 교통사고로 한 쪽 팔을 거의 못 쓰게 됐다. 먹고 살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박카스 아줌마가 됐다. 왜 하필 성매매로 밥벌이를 하느냐고 묻자 한 할머니가 갑자기 바지를 걷고 무릎에 점점이 박힌 뜸 자국을 보여준다. "너무 아파서 혼자 뜸뜬 자국이야. 팔 다리 멀쩡하면 주방에서 설거지라도 하겠어. 돈 없어서 거지꼴로 굶어죽는 것보단 낫잖아."
한씨 할머니에게 립스틱과 상의 색깔을 꽃분홍색으로 맞춘 아줌마가 다가와 알은체를 한다. 안산댁(59) 아줌마다. 안산댁 아줌마는 앞니를 비롯해 치아가 9개나 썩었다. 입을 열 때마다 듬성듬성 썩은 이가 보인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탓에 말투도 어눌하다. 안산댁 아줌마는 임대아파트의 임대료 20만원을 벌기 위해 박카스를, 몸을 판다. 딸이 둘 있다. 남편은 결혼한 지 7년 만에 간암으로 죽었다. "외로워 죽겄어. 부잣집 남자도 못 만나고. 이빨도 아픈데 돈이 어디 나서 치료를 하나"며 하소연도 늘어놓는다. 왜 이 일을 하느냐고 질문하기가 무섭게 가방을 열어 보여준다. 약봉지가 줄줄이 사탕처럼 딸려 나온다. 알약이 하나, 둘, 셋…. 총 7개다. 위장약, 허리약이란다. "몸이 다 고장났어. 애들도 정부에서 받아먹어서 키운거야.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지 뭐." 체념한 말투다.
안산댁 아줌마의 푸념을 옆에서 듣고 있는데 한씨 할머니가 기자를 툭툭 친다. "저기 영감하고 빨간옷 입은 여자 좀 봐봐." 시선을 돌리자 한 할아버지와 50대 아줌마가 지하철역 지하 기둥에 나란히 앉아있다. 주변 시선에 아랑곳 않고 할아버지에게 여성이 쪽 입을 맞추자 돈 1만원을 얼른 쥐어준다. "저 영감이 한 달에 연금이 180만원이 나오는데 입 한 번 맞추면 만원, 가슴 한 번 만지면 만원 하는 식으로 하루 7만원 나가. 저 여자는 가만히 앉아서 7만원 벌어가지고 가는거야." 은근히 부럽다는 눈치다.
"흉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들어줘." 한 할머니는 민망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추임새를 넣듯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비아그라도 팔고 그렇게 해서 1만원도 벌고 2만원도 벌고 그래. 이거 흉이라고 생각하지마' 이런식이다. 할머니는 "여기 앉아 있다 보면 사는 게 별거 없다. 인생 이래 살다 가는가 보다 싶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내 혼자서 노래를 하나 지었다." 할머니가 입을 뗀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누가 내 시체를 묻어주랴. 봄이 오면 꾀꼴새가 내 무덤에 와서 울어주랴."
다시 피카디리 극장 앞. "딸내미 때문에라도 벌어야 하는데 그럼 나와야지." 한 박카스 아줌마가 휴대전화에 대고 말을 하며 파고다공원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할머니일 그녀의 뒷모습에는 직업적인 화류 여성의 모습이 깊이 배어있어 보는 이를 씁쓸하게 했다.
◆ "여성 가난과 노인 성욕의 일그러진 결합"
이호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사회복지상담학과)는 파고다 일대의 박카스 아줌마 현상을 노인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만들어진 음성적인 성문화로 정의했다.
학력이 낮고 건강하지 못한 탓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여성들이 호구지책으로 삼은 것이 '성매매'이며 나이와 상관없는 남성들의 삐딱한 성욕이 어우러지면서 빚어진 현상이 바로 이들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노년기에 접어든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 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2002년부터 박카스 아줌마를 연구한 이 교수는 "평생 전업주부로 살다가 뒤늦게 성매매 현장에 나온 분들도 적지 않다.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오로지 가난한 탓"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만약 지금처럼 박카스 아줌마 현상을 그저 종로3가만의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한다면 성병 등 보건의료학적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노인의 경우 노화가 함께 진행돼 성병인지 노화인지 구분을 못하기 때문에 성병을 옮은 남성이 가정으로 돌아가 전염시킬 우려도 높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남성 노인을 그저 '노인'으로만 보는 시각도 문제"라며 "남성의 발기부전 확률은 70대까지도 35% 밖에 되지 않으며, 80대가 돼서야 75%가 발기부전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80대 할아버지도 젊은 남성과 똑같이 성욕을 느끼고 성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아울러 이 교수는 "이런 남성의 욕망을 건강하게 배출할 창구가 필요하며 부부 성교육, 레크리에이션, 교육 활동의 장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호선 교수는
이호선 교수는 박카스 아줌마의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2008년 80여명의 박카스 아줌마들을 인터뷰했다. "너 굶어본 적 있느냐, 폐지 주워 본 적 있느냐." 인터뷰차 만난 여성들은 왜 성매매를 하느냐는 질문에 냉소했다고 한다. 실상은 경험해 보지도 않고 책상에서만 연구한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단다. 그 길로 며칠 동안 60대 여성을 따라 함께 폐지를 주워 손에 쥔 돈이 달랑 5200원. 그렇게 해서 얼굴을 튼 박카스 아줌마 10여명을 심층 인터뷰해서 두 차례에 걸쳐 논문을 발표했다. 올해 안에 3차 논문이 나올 예정이다.
1990년대 중반 인천의 집창촌에서 젊은 성매매 여성들을 인터뷰했던 이 교수는 이들과 박카스 아줌마의 차이점을 이렇게 말한다. "젊은 여성에게는 그런대로 희망이 있다. 박카스 아줌마들은 내일은 뭘 하겠다는 희망이 없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박카스 아줌마를 성매매 여성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보호하고 끄집어내야 할 존재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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