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5. 2. 24. 00:10
보수란 대체 무엇인지 묻자
‘三無者’ 이문열이 답했다
“과거를 악당으로 몰지 마라
그 수고가 오늘을 만들었다”
누구나 일생을 통해 꼭 하고 싶은 이야기, 그래서 평소에는 가슴 깊이 묻어두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는 그것을 직접 글로 펼쳐 보인다. 이문열에게는 ‘영웅시대’(1984)가 그런 이야기였다. 6·25를 전후한 자신의 불행한 가족사. ‘영웅시대’는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으로 당대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문열이 유일하게 초판본을 보관해 온 소설이다.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특별전이 열리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그 소장품을 마주했다. 인천상륙작전 직후 월북한 공산주의자 아버지로 인해 수시로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아들의 기억과 감정이 담겨 있다. 이문열은 “내 삶을 완전히 비틀어 놓은 아버지의 월북이 그때의 내게 절실했기 때문에 쓴 것”이라고 했다.
‘빨갱이 가족’ 딱지는 1948년 그가 태어나면서 물려받은 상속재산과 같았다. 오기를 부릴 땐 ‘삼무자(三無者)’라며 큰소리치고 다녔다. 나라가 없고, 아비가 없고, 스승이 없다는 뜻이었다.
‘영웅시대’에서 이문열은 고백한다. 소년 시절에 공산주의라는 말은 피 묻은 칼이나 화약 냄새 나는 총 같았다고. 철이 들면서 공산주의는 형체도 색깔도 냄새도 없는 ‘생각의 다발’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그는 끊임없이 좌와 우를 비교하며 살아야 했다. 좌파는 평등을, 우파는 자유를 우선순위에 둔다. “내가 동의하기 어렵고 거추장스러운 건 좌파가 주창하는 평등이 전체주의, 집단주의로 흐르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속도로 걸어갈 수 있는 게 자유라고 생각한다.”
보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물었다.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 이문열은 답했다..... 현대사를 보면 박정희 20년과 신군부 10년, 두 군사정권이 절벽처럼 가로막고 있지만 그 시대에 우리 삶은 더 나아졌다. 좋은 것은 빼놓고 왜 나쁜 것만 앞세우나. 적어도 ‘필요악’이었다.” 그런 형태의 권력이 아니고는 해결하지 못할 일이 많았다는 뜻이다.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이 보수다. 나라도 없고 아비도 없고 스승도 없다던 ‘삼무자’의 말이라 더 웅숭깊게 들렸다.
https://v.daum.net/v/20250224001015635
[태평로]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
[태평로]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
누구나 일생을 통해 꼭 하고 싶은 이야기, 그래서 평소에는 가슴 깊이 묻어두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는 그것을 직접 글로 펼쳐 보인다. 이문열에게는 ‘영웅시대’(1984)가 그런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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