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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9] 무 한 조각 썰고 칼을 칼집에 넣는다면

조선일보 2023. 8. 30. 03:04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 한 번의 큰 충격보다 수백 번의 작은 충격을 받아들여. 그러나 커다란 충격이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거야. 작은 충격은 우리를 점점 진창 속으로 몰아넣지만, 그건 아프지 않지. 추락은 편한 점도 있으니까. 그건 마치 파산 직전에 있는 상인이 그걸 감추고 여기저기서 돈을 빌린 후 평생 그 이자를 갚느라 늘 불안하게 사는 것과 같지. 나는 파산을 선언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쪽을 택하고 싶어.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중에서 광주 MBC가 주관해 온 ‘정율성 동요 경연 대회’는 그의 탄생 100주년이던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열렸다. 학교장 추천으로 참석한 어린이 합창단은 자유곡과 함께 정율성 작곡 동요 한 곡을 의무적으로 부..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7] 범죄자와 가족

조선일보 2023. 8. 16. 03:01 “여길 떠나야겠어. 사람들의 입방아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구나.”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난 이사 가고 싶지 않아요.” 갑자기 엄마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엄마는 사람들이 우리가 여기 사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남은 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우리의 삶은 무너져 내렸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가 우리의 삶을 망가뜨린 것이다. 엄마의 삶과 내 삶은 물론 아버지 자신의 삶마저도. - 비외른 잉발젠 ‘우리 아빠는 도둑입니다’ 중에서 새만금 잼버리는 특정 지역과 조직위원회의 축제였다. 공식 예산액 1170억원 중 870억원이 조직위 운영비 및 사업비 명목으로 사라졌다. 야영장 실태를 보면 시설비 130억원도 기반..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6] 범죄가 활개 치는 이유

조선일보 2023. 8. 9. 03:0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단순함을 강조했어. 단순함을 첫 번째 원칙으로 삼으라고 했지. 범인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첫 번째 원칙은 뭘까? 그는 왜 사람을 죽일까?” “분노, 사회적 소외, 성적 좌절감 때문에….” “아니야.” “그럼 뭔데요?” “탐욕이야. 그것이 그의 본성이야. 우린 어떤 식으로 탐욕을 품게 될까, 클라리스? 맞아. 우리는 매일 보는 무언가를 탐하게 되는 거야. 당신도 다른 무언가를 향해 늘 눈을 이리저리 굴리지 않아?” - 토머스 해리스 ‘양들의 침묵’ 중에서 신림동에서 네 명을 칼로 찌른 피의자는 ‘열등감이 든다, 살기 싫다,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분당에서 14명의 사상자를 낸 용의자는 ‘누군가가 나를 청부살인..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5] 법을 악용하는 ‘교활한 천사들’

조선일보 2023. 8. 2. 03:00 “법이란, 사람과 생명과 돈을 닥치는 대로 삼켜버리는 거대한 괴물이다. 당사자주의, 억제와 균형, 정의의 추구 같은 개념은 부식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지키고 품어야 할 법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법은 진실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곳엔 오직 타협과 개량과 조작만이 있을 뿐이다. 나도 무죄냐 유죄냐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사람들은 나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나는 다만 교활한 천사일 뿐이다.” - 마이클 코널리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중에서 ‘간첩 신고는 113.’ 한때는 흔한 표어였지만 언제부턴가 ‘간첩 없는 나라’가 되었다. 전 정부 시절에는 간첩을 신고하면 신고한 사람을 잡아간다는 말까지 흘러 다녔다...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4] 공무원을 위한 세금과 징벌

조선일보 2023. 7. 26. 03:02 “그는 절망적인 운명과 싸우겠다는 즉각적이고도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다시 참된 인간이 되자. 내일은 시내로 나가 일자리를 구해야지. 이 세상에서 떳떳한 사람이 되어 보는 거야. 그는 누군가 자기 팔을 잡는 걸 느꼈다. 돌아보니 틀림없는 경찰의 얼굴이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나?’ 경찰관이 물었다. ‘뭐 별로.’ 소피가 대답했다. ‘그럼 따라와.’ 경찰관이 말했다. 이튿날 아침 즉결 재판소의 치안 판사가 판결했다. ‘징역 3개월.’” -오 헨리 ‘경찰관과 찬송가’ 중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세금 확보에 혈안이다. 한 마리에 10만원, 두 마리면 깎아서 15만원의 반려동물세가 좋겠다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인구 절벽 시대라지만 자식이 없는 가구엔 무자녀세, 싱글세를 ..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3] 명예로운 ‘불멸의 초대장’

조선일보 2023. 7. 19. 03:04 “일단 불멸의 배에 오르면 영원히 내려갈 수가 없어요. 이건 공포예요. 공포라고요. 내가 죽어 널브러져 있을 때, 나는 보았어요. 내 시신 옆에 쪼그리고 앉은 마누라는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모조리 끄적거렸고, 그 뒤에서 아들 놈도 뭔가 써 갈기고 있더군요. 친구들은 나에 대해 들은 온갖 뒷공론과 중상을 해댔고 수백 명의 저널리스트도 마이크를 들고 앞다투어 몰려들었지요.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그 얘기들을 분류하고 분석하고 발전시켜 수많은 논문과 책으로 펴냈답니다” -밀란 쿤데라 ‘불멸’ 중에서 정치인은 말로 매혹하고 뜻으로 산을 옮긴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과 목적이 있어도 정치인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눈에 훅, 귀에 쏙, 마음을 움직이는 구호가 필수다...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2] ‘더러운 평화’와 ‘이기는 전쟁’

조선일보 2023. 7. 12. 03:04 “전우의 편지는 끼엔의 가슴을 덥혀주었다.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었다. 전쟁을 겪을수록 파멸의 힘보다 더욱 강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전쟁이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힘을 가졌다 해도, 모든 것을 파멸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점점 믿게 되었다. 모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론 추악한 것도 남아 있었고, 아름다운 것도 남아 있었다.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본래의 자기 자신만은 바뀌지 않았다.” -바오 닌 ‘전쟁의 슬픔’ 중에서 지난 정부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가 더 가치 있다’고 했다. 현재 야당도 ‘비싼 평화, 더러운 평화가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고 한다.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 미사일 발사..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1] 투표권이 없는 ‘요람’을 지켜라

조선일보 2023. 7. 5. 03:02 “아기가 죽었다. 장난감 더미 위에 부유하듯 널브러진 아기를 회색 커버 안에 누이고 뼈마디가 비틀어진 몸 위로 지퍼를 채웠다. 여자아이는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아직 살아 있었다. 그 아이는 사나운 짐승처럼 맞서 싸웠다. 싸움의 흔적들. 아이의 말랑한 손톱 아래 박힌 살점들이 발견되었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구급차 안에서 아이는 몸부림쳤고 경련으로 꿈틀거렸다. 두 눈을 부릅뜬 모습이 애타게 공기를 찾는 것 같았다. 목구멍에는 피가 가득했다.” -레일라 슬리마니 ‘달콤한 노래’ 중에서 지난해까지 8년간, 출생신고 되지 않은 아기는 2000명이 넘는다. 태어나고 2년 넘게 나 또한 세상에 없는 아이였다. 예전에는 본적지에서 출생신고를 했는데 지방에 계신 조부가 출생신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