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1374

추락하는 자의 날개[이은화의 미술시간]〈210〉

동아일보 2022. 04. 14. 03:03 이카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테네의 발명가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밀랍과 깃털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다 추락했다. 순리를 거스르는 과도한 욕망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후대에 많은 문학가와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도 이카로스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이카로스는 몸이 기역자로 꺾인 채 하늘에서 추락하고 있다. 피처럼 붉은색의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태양은 검게 변했고, 화면 아래 마을에는 무중력 상태로 공중에 부유하는 동물과 사람들이 보인다. 환호하는 건지, 도우려고 하는 건지 몇몇 사람들은 추락하는 이카로스를 향해 손을 위로 뻗었고, 어떤 이들은 그의 불행에 무관심하..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23] 16세기 콩 먹방의 관객

조선일보 2022. 04. 12. 03:02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1560~1609)의 ‘콩 먹는 사람’은 16세기판 ‘먹방’이다. 우리 눈앞에 보란 듯이 펼친 식탁에는 삶은 콩 한 사발, 빵, 파, 채소 파이와 주전자를 차려뒀다. 농부 차림의 남자는 일단 빵을 떼어 먹으며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나무 수저에 콩을 퍼서 한입 가득 넣을 참이다. 수저에서 국물이 흐르는데 남자는 갑자기 입을 벌린 채 눈을 치켜뜨고 우리를 본다. 오늘날 먹방 진행자가 음식을 먹다 말고 실시간 댓글을 확인하는 모습과 어쩌면 이렇게 똑 닮았는지. 과연 이토록 리얼한 콩먹방의 시청자는 누구였을까. https://news.v.daum.net/v/20220412030235630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

[그림이 있는 아침] 몽마르트르의 거인이 본 얼굴..앙리 로트레크 '여자 곡예사 샤-위-카오'

한국경제 2022. 04. 08. 17:31 춤을 막 추고 내려온 여성이 소파에 앉아 있다. 캔버스를 가르는 노란 치마 장식은 하늘로 높게 묶어 올린 머리칼과 어우러져 둥근 원의 안정적인 구도를 그려낸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화려한 색이지만, 이 그림의 주인공은 물결치듯 강인해 보이는 여성의 뒷모습과 지그시 감은 눈. 19세기 말 환락의 결정판이던 파리 물랑루즈의 곡예사 샤-위-카오의 뒷모습은 역동적이면서 차분하다. 당시 물랑루즈엔 ‘툴루즈 가문의 작은 기사’로 불리는 단골손님이 있었다. 152㎝의 작은 키에 매일 밤 댄서들과 어울리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 1882년 유명 화실 ‘페르낭 코르몽’을 드나들며 인상파 화가들의 반란에 흥미를 느꼈다. https://news.v.dau..

세실리 브라운..'모호한 감성'으로 변화무쌍한 인생 그려

매경이코노미 2022. 04. 07. 16:24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려고 텅 빈 캔버스 앞에 서는 화가들의 마음은 어떨까. 수백 년 넘게 사용해온 유화 물감과 캔버스라는 재료를 사용해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고자 하는 중압감은 얼마나 클까. 그 힘든 압박감을 이겨내고, 모든 화가들의 염원을 이룬 이가 여기 있다. 소용돌이 같은 복잡한 화면 속 곳곳에 숨겨진 비밀들을 찾느라 쉽사리 눈을 뗄 수 없는 매혹적인 그림으로 전 세계 컬렉터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국 출신 중견 화가,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 1969년생)이다. 그녀가 런던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한 것은 1993년. 당시 런던 미술계는 데미언 허..

숨겨진 신분[이은화의 미술시간]〈209〉

동아일보 2022. 04. 07. 03:03 검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푹신한 암체어에 편하게 앉아 있다. 배경도 의자도 모두 빨간색이라 강렬한 인상을 준다. 하얀 피부를 가진 소녀의 얼굴은 무표정하지만, 화면 밖을 응시하는 눈빛은 편안해 보인다. 도대체 이 소녀는 누굴까? 윌리엄 체이스는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이자 헌신적인 교육자였다. 뉴욕에서 수학한 후 독일 뮌헨에서 화가로 활동하며 첫 명성을 얻었다. 1878년 뉴욕으로 돌아와 유명 화가들이 모여 살던 10번가에 작업실을 차렸다. 그는 인물, 풍경, 정물, 파스텔, 수채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났지만 명사들의 초상화로 이름을 날렸다. 당대 뉴욕의 주요 인사들이 그의 모델이 되었다. 한데 이 그림 속 모델은 예외적으로 보육원의 고..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22] '봄이다, 살아보자'

조선일보 2022. 04. 05. 03:04 봄이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데, 날마다 창밖이 더 밝고, 매일 보는 가로수도 어제보다 더 초록이다. 용케 봄인 줄 알고 피어난 꽃송이를 보면 나른하고도 설렌다. 프랑스 북부 작은 마을 에라니,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1830~1903)의 집 앞 사과밭에도 봄이 왔다. https://news.v.daum.net/v/20220405030416891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22] '봄이다, 살아보자'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22] '봄이다, 살아보자' 봄이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데, 날마다 창밖이 더 밝고, 매일 보는 가로수도 어제보다 더 초록이다. 용케 봄인 줄 알고 피어난 꽃송이를 보면 나른하고도 설렌다. 프랑스 북부 작은 마..

[박일호의미술여행] 위기를 잘 극복했겠지

세계일보 2022. 04. 01. 22:34 고대 그리스 시대 이야기다. 밀로란 이름의 병사가 어쩌다 나무줄기 틈새에 손이 끼자 손을 비틀며 고통스러워 한다.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한데, 이때를 놓치지 않고 사자가 달려들어 그의 엉덩이를 물어뜯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17세기 프랑스 조각가 피에르 퓌제의 작품인데 당시 고전주의 비평가들에 의해 모진 비판을 받았다. 고전주의 이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https://news.v.daum.net/v/20220401223412994 [박일호의미술여행] 위기를 잘 극복했겠지 [박일호의미술여행] 위기를 잘 극복했겠지 피에르 퓌제의 ‘크로토나의 밀로’ 고대 그리스 시대 이야기다. 밀로란 이름의 병사가 어쩌다 나무줄기 틈새에 손이 끼자 손을 비틀며 고..

고된 삶[이은화의 미술시간]〈208〉

동아일보 2022. 03. 31. 03:03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여성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작업대 위에는 다려야 할 세탁물이 놓여 있다. 19세기 파리의 여성 세탁부를 그린 이 그림은 툴루즈로트레크의 초기 대표작이다. 귀족 가문 출신의 화가는 왜 신분이 낮은 노동자 계층 여성을 모델로 그린 걸까? 툴루즈로트레크는 남프랑스 알비의 이름난 귀족 가문 출신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뼈가 약한 유전적 질환도 함께 물려받았다. 이는 혈통 보존을 위한 근친상간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3세 때 넘어져 오른쪽 대퇴골이 골절됐고, 14세에는 왼쪽 다리마저 부러진 후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장애를 갖게 됐다. 또래의 귀족 남성들이 즐기던 승마나 사냥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혼자 할 수 있는 미술에 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