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自然과 動.植物

꿀벌, 서식환경 나빠지자 크게 줄어들고… 말벌·땅벌은 마을로 내려와 사람에게 '벌' 주네

바람아님 2015. 8. 15. 18:45

(출처-조선일보 2015.08.15  시인·소설가, '시골극장' 작가)

[원재길의 시골일기]

꽃가루 뭉치를 나르며 꿀을 모으는 벌꽃가루 뭉치를 나르며 꿀을 모으는 벌 / 그림 원재길


한때 우리 마을에선 한 집 건너마다 꿀벌을 쳤다. 

갈봄 여름 없이 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산골이라서 꿀벌이 무척 많았다. 

가장 꽃이 많이 피는 봄날엔 온종일 벌이 붕붕 날아다니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우리 집 앞마당에서도 벌들이 감꽃에 달라붙어 날개 치는 소리가 아름드리 감나무를 

하늘로 들어 올릴 듯했다. 

가을이면 감을 따서 이웃에게 나눠주고도 남아서 허리 높이 항아리를 채워 감식초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해와 지지난해엔 감이 부쩍 덜 열렸다. 

꿀벌이 크게 줄며 감꽃에서 꽃가루받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였다. 

올봄에도 꿀벌은 꾸준히 눈에 뜨이게 줄어들었다. 

아랫마을 사과밭에 들렀더니 일꾼들이 꿀벌 대신에 암술머리에 꽃가루를 묻히고 있었다. 

이웃한 복숭아밭에선 돈을 주고 호박벌을 사다가 꽃가루받이를 시켰다. 

우리 마을 벌통을 보면 몇 해 안쪽에 얼마나 많은 꿀벌이 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열 집 가운데 아홉 집 벌통에서 꿀벌이 모두 죽거나 멀리 떠나갔다. 

일흔 해 가까이 토종벌을 쳐서 꿀벌박사로 불리는 동네 어른께선 이런 일을 처음 겪는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분은 한창 잘될 때 꿀벌 칠팔십 통을 쳤으나 지금 벌이 들어 있는 통은 스무 개가 되지 않았다.

그분과 함께 뒤뜰에 놓인 벌통을 살펴보았다. 

서너 통에선 들목 앞에 나앉은 꿀벌 모두가 술에 취한 듯 비실거렸다. 

벌통 하나에선 간밤에 여왕벌이 일벌과 수벌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뒤뜰 저만치에서 수박 반쪽만 한 덩어리를 이룬 벌들이 복숭아나무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꿀벌박사께선 벌들이 살충제 같은 농약에 중독되면서 머리가 이상해졌고 병을 이겨내는 힘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지구 기온이 높아져 꽃들 한꺼번에 피고 지는 일이 잦아진 탓도 있다고 했다. 

인간이 재앙을 불렀다는 얘기였다.

아마도 이런 인간을 벌 주기로 단단히 벼른 듯하다. 

언젠가부터 산에 사는 말벌들이 걸핏하면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공격한다. 

무섭고 사납기로는 장수말벌이 으뜸이다. 

깍두기 머리를 하고 노란색 투구를 쓴 장수말벌 얼굴을 보면 금세 머리끝이 쭈뼛해진다. 

주둥이는 꼭 쥐덫처럼 생겼고 새까만 구멍이 세 개 뚫린 이마는 또 다른 얼굴처럼 보인다.

다음으로 위험한 벌은 말벌과 좀말벌과 털보말벌, '땡삐'라고도 불리는 참땅벌과 땅벌이다. 

예닐곱 가지 쌍살벌도 살벌하긴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여름을 지나 가을을 보내는 동안 한껏 독성이 세지고 거칠어진다. 

겨우살이를 앞두고 집을 새로 짓거나 먹이를 모으느라 바빠서 신경이 곤두섰기 때문이다. 

외딴 곳에 혼자 있다가 이런 벌에 쏘였다간 정말 큰일 난다.

나도 지난 보름 사이에 두 번이나 오싹한 일을 겪었다. 

후배와 같이 그 집 조상 묘에서 풀을 베는데 땅벌이 쌩 날아와 왼다리 오금을 쏘았다. 

쇠꼬챙이에 찔린 듯한 통증에 신음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 뒤로 여러 날 절뚝대며 걸어 다녔다. 

어제 아침엔 감나무를 타고 오르는 환삼덩굴과 찔레나무 가지를 쳐내는데 쌍살벌 수십 마리가 와락 달려들었다. 

쌍살벌에 쏘인 팔뚝과 손등이 핏기를 잃더니 곧 벌겋게 부어올랐다. 

지금 왼손보다 곱절로 두툼해져서 후끈거리는 오른손을 달래며 이 글을 쓴다. 

따끔한 벌을 받아 오그라든 마음으로 멀리 떠나간 달콤한 꿀벌들을 그리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