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분수대] 변호사와 무뢰배

바람아님 2016. 5. 19. 00:28
[중앙일보] 입력 2016.05.18 00:56
기사 이미지

이상언/사회부문 차장


‘무뢰배(無賴輩)가 항상 송정(訟庭)에 와 품을 받고 대신 송사(訟事)를 하기도 하고, 혹은 사람을 인도하여 송사를 일으키게 하며, 법률 조문을 마음대로 해석하여 법을 남용해서 옳고 그름을 변경하고 어지럽게 하는데, 시속(時俗)에서 외지부(外知部)라고 하니….’ 『성종실록』의 95권(성종 9년 8월)에 적혀 있는 형조(刑曹)의 보고다. 시중에서 ‘외지부’라고 불리는 이들의 해악을 임금에게 열거한다.

그 뒤는 이렇게 이어진다. ‘외지부라고 일컫는 자들은 이미 과죄(科罪)하여 전 가족을 변경으로 옮겼으나, 그래도 간사한 무리가 오히려 다 없어지지 아니하여 예전에 비해 다름이 없습니다. 청컨대 한성부·사헌부·장례원에서 찾아 잡아서 사실을 조사하여 전과 같이 과죄하게 하소서.’ 성종이 ‘주문대로 따랐다’고 실록에 기록돼 있다.

‘무뢰배(나쁜 일을 일삼는 사람들)’라고 표현된 외지부는 현대적 의미로 ‘법률 서비스업 종사자’였다. 변호사·법무사의 기능을 담당했다. 조선시대에 주로 소송을 대리하거나 조종했다. 하지만 국가가 그런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불법적 존재였다. 따라서 ‘사건 브로커’에 가까웠다. 송사 개입이 드러나면 가족까지 변방으로 쫓겨났다.

『연산군일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외지부 사람들을 삼수(三水)·갑산(甲山) 두 고을에 옮기도록 명하였는데, 삼수는 강변의 작은 고을로서 농사지어 먹을 땅이 없으니, 생계를 꾸려갈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갑산에 많이 옮기도록 하라”고 하였다.’ 갑산은 북한 개마고원 동편의 두메산골이다.

외지부는 『선조실록』에도 등장한다. 적발되는 족족 험지로 보내졌지만 근절되지 않았다. 수요가 꾸준히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은 송사에 돈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글과 법을 몰라 백성들이 억울한 사정을 호소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해도 재판은 철저히 공적 영역에 뒀다.

조선의 선조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희곡 『아테네의 타이먼』에서 ‘금만 여기에 있으라. 검은 것도 희게, 늙은 것은 젊게, 추함을 미로, 비겁도 용기로, 악도 선으로, 천함도 고귀하게 만들 수 있지. 오, 신이여! … 너는 치욕도 존경케 하고 도적도 찬미한다’고 썼다. 금력으로 법률 전문가를 고용하고, 그 전문가가 죄를 덮거나 선악을 뒤집는 일은 동서고금을 관통한다. 법률 지식인이 지나치게 돈을 좇으면 무뢰배 취급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