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남자의 동굴'

바람아님 2016. 5. 19. 06:41

(출처-조선일보 2016.05.19 김광일 논설위원)

예기(禮記)에 나오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 탓이었을까. 한옥에서 남녀는 공간 섞이는 걸 꺼렸다. 

남자는 대문 가까운 사랑방을 차지했고 안주인은 안방 보료에 앉았다. 

주요섭 단편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에서 핑크빛 사연이 싹트는 아저씨도 사랑에 머문다. 

박경리 대하 '토지'에서 만석꾼 최치수는 사랑방 시중을 드는 여종 손에 죽는다. 

근대로 오면서 사랑방이 사라졌다. 

인구 80%가 아파트에 살면서 흔적도 없다. 

주거학자 전남일 책 '집'에 그 설명이 소상하다.


▶미국살이를 하다 돌아온 동료가 '하우스 헌터스' 얘기를 했다. 그곳서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이란다. 

이사 가는 부부가 어떻게 집을 고르는지, 무얼 따지는지 '집 사냥꾼'에 빗대 보여준다. 

주(州)마다 특색 있는 집 모양, 내부 설계, 자잘한 양식 같은 조건을 견주다 부부는 지하실을 누가 쓸지를 놓고 승강이를 벌인다. 

아내는 아이들 놀이 공간을 주장한다. 남편은 갖가지 공구를 들여놓고 자기가 쓰겠다고 우긴다. 

열에 아홉은 아내가 이겼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어제 조선일보에 '남자를 위한 동굴' 이야기가 실렸다. 

아내와 아이가 온통 차지했던 집 안에 남자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30대 회사원은 총각 때 수집한 레고 블록, 시계, 술병, 책을 한방에 모으고 벽에 감청색 페인트를 칠했다. 

쌍둥이를 기르는 30대 남자는 작은방에 무선 조종 자동차를 진열하고 낮엔 아이들 못 들어가게 문을 잠갔다. 

아내의 공간은 가족에게 열려 있지만 남편의 공간은 닫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어떤 사업가는 아파트에 자기만을 위한 영화 감상실을 만들었다. 현관 바로 옆 방을 홈시어터 룸으로 꾸몄다. 

빔 프로젝트 스크린에 가슴까지 떨리는 오디오 사운드는 물론 방음벽도 시공했다. 

만화가로 이름난 교수는 집 안에 자기만을 위해 와인 바를 차렸다. 꽤 값나가는 오디오와 와인 셀러로 짝을 맞췄다. 

'장미 살롱'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누구 간섭도 없이 숨을 고를 시간과 공간이 절실했던 남자들이다.


▶존 그레이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남자의 동굴'이 나온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여자는  친구와 수다를 떨지만 남자는 조용히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상처받은 짐승처럼 외진 곳에 틀어박힌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한 요나 콤플렉스와 비슷할까. 

구약 시대 고래 배 속에 사흘을 갇혔던 요나처럼 현대인은 어머니 배 속 같은 폐쇄 공간에 숨으려는 퇴행 증상이 있다. 

회사에서 집안에서 내몰린 남성은 숨을 곳을 찾아 동굴을 파야 하는가.



   

   집 | 전남일 지음 | 돌베개 | 

   368쪽 | 2만원



 **. 관련 기사 보기 : 

  집 안에 들어오다, 남자를 위한 '동굴'(조선일보 2016.05.18)


  [책과 삶]우리는 왜 항상 또 다른 ‘집의 유토피아’를 꿈꿀까

   (경향신문 2016.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