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분수대] 좀비영화보다 더 무서운 것

바람아님 2016. 5. 21. 00:07
중앙일보 2016.05.19. 00:20

‘미끼를 물었다’. 개봉 일주일 만에 전국 300만 관객에 다가선 영화 ‘곡성(哭聲)’의 포스터 문구다. 그 미끼에 단단히 물렸다.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됐다. 전작 ‘추격자’ ‘황해’에서 탄탄한 공포를 빚어냈던 나홍진 감독에게 우롱당한 듯했다. 한적한 농촌 마을에서 일어난 핏빛 살인극을 엉킨 실타래처럼 빚어낸 탓에 사건의 전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곡성’은 한마디로 악의 뿌리를 파고든 호러물이다. 서양 공포영화의 단골손님인 좀비가 스크린을 가로지른다. 정체불명의 연쇄살인을 둘러싼 악마와 무당의 대결이 팽팽하고, 귀신 들린 딸을 살려 내려는 아버지의 분투가 눈물겹다. 할리우드 명작 ‘반지의 제왕’ 캐릭터인 골룸을 닮은 듯한 일본인 샤먼, 방울을 흔들고 나무모형에 대못을 박는 무당 등 동서양 무속이 혼재돼 있다.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곡성’은 22일 폐막하는 프랑스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대됐다. 필름마켓 시사회 전석이 매진됐다는 소식이다. 이 영화제에 함께 나간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에 대한 현지 반응도 뜨거웠다. 흥미롭게도 ‘부산행’ 또한 좀비를 전면에 내세웠다. 부산행 KTX에 올라탄 좀비와 승객의 아비규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우리 상업영화에 드물게 출현했던 좀비가 이 시대 문화코드로 떠오른 모양새다.


두 영화에서 정말 무서운 건 무차별 살인이다. ‘곡성’의 피해자들은 이유 없이 죽어 간다. 원한을 살 뚜렷한 원인도 없이 악의 희생물이 된다. 포스터 문구대로 ‘미끼를 문 죄’밖에 없다. ‘부산행’의 피해자 역시 불특정 다수다. ‘묻지마 범죄’를 옮겨 놓은 것 같다. 타인에 대한 신뢰가 희박해진 사회, 거리에서든 엘리베이터에서든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흉기를 들이대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닮았다. 무고한 생명을 앗아 간 가습기 살균제도 지금 여기의 좀비요, 악령일 터다.


좀비 이전에 한국 공포물의 으뜸 캐릭터는 귀신이었다. 옛이야기 작가 서정오씨에 따르면 우리나라 귀신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처녀귀신이 말해 주듯 슬프고 애처로운 경우가 많았다. 싸우고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맺힌 한을 풀고 다독여야 할 ‘이웃’이었다. 귀신에서 좀비로의 전이(轉移), 이웃이 사라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처럼 비친다. 굿이라도 한판 벌여야 하는 걸까.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굿판을 보려면 국립민속박물관에 가 보길 권한다. ‘카메라를 든 무당’으로 불린 사진작가 김수남 특별전에서 적잖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