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오후여담>남자가 뭐길래

바람아님 2016. 5. 24. 00:25
문화일보 2016.05.23. 14:34

황성규 / 논설위원

생삼락은 공자나 맹자만 말한 게 아니다. 영계기(榮啓期) 버전도 있다. 어느 날 공자가 태산에 놀러 나갔다가 ‘성’이라는 들판에서 만난 은자(隱者)가 영계기라는 상노인이다. 사슴 가죽을 걸치고 새끼줄로 허리띠를 두른 초라한 행색이었지만, 그는 금(琴)을 타면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공자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 무슨 일로 그렇게 즐거우신지요?” 대답이 돌아왔다. “만물 중에 사람이 으뜸인데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고, 남존여비(男尊女卑)인데 남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해와 달도 못 보고 요람에서 죽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이미 아흔다섯 살이나 먹었소. 이게 저의 삼락(三樂)이라오.”

흔히 논어에서 접한 ‘때로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하는 공자의 인생삼락과 달리, 이 고사는 ‘열자(列子)’의 천서(天瑞)편과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소개돼 있다.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즐거움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인용되곤 한다. 지금은 사어(死語)로서, 옛 문헌이나 사전에서나 볼 수 있는 남존여비란 말도 이 고사가 원전이다. 남녀에 구별이 있어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하다고 여긴 당시의 사고가 궁금해진다, 문득.


그러면 남자를 가리키는 한자 ‘사내 남(男)’은 무슨 뜻으로 쓰였는가. 파자학(破字學)에서는 논밭에서 힘써 일하는 사람으로 설명한다. 남자란 곧 농부인 셈이다. 고대 중국 최고 권위의 한자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 제13편의 기술에 따른 해설이다. 또, ‘남’자는 장부(丈夫)라는 의미로도 쓰였다. 이 ‘어른 장(丈)’이란 한자가 만들어지던 중국 주나라 시대의 장부는 키가 1장, 즉 10척이나 되는 남성을 가리켰다. 1척이 약 18㎝이던 당시의 척관법으로 보면 키가 180㎝가 넘는 건장한 ‘상남자’다. 결국, 남자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힘써 논밭을 일구는 농부이거나, 헌칠한 체구의 근육질 대장부일 뿐이다. 국어사전도 남성으로 태어난 사람, 또는 사내다운 사내라고 풀이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의 강남 공중 화장실 살인사건과 관련, ‘다음 생엔 부디 남자로 태어나라’는 추모 메시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단순히 ‘남자 가해자와 여자 피해자’로 몰아가는 건 옳지 않다. 지금은 남존여비라는 말조차 사용하지 않는 21세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