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친필>
11.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開城人逐客詩 개성인축객시)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읍호개성하폐문 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子獨秦 (황혼축객비인사 예의동방자독진)
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12. 안락성을 지나다가 배척받고 (過安樂見오. 과안락견오)
安樂城中欲暮天 關西孺子聳詩肩 (안락성중욕모천 관서유자용시견)
村風厭客遲炊飯 店俗慣人但索錢 (촌풍염객지취반 점속관인단색전)
虛腹曳雷頻有響 破窓透冷更無穿 (허복예뢰빈유향 파창투냉갱무천)
朝來一吸江山氣 試向人間벽穀仙 (조래일흡강산기 시향인간벽곡선)
안락성 안에 날이 저무는데 관서지방 못난 것들이 시 짓는다고 우쭐대네.
마을 인심이 나그네를 싫어해 밥 짓기는 미루면서 주막 풍속도 야박해 돈부터 달라네.
빈 배에선 자주 천둥 소리가 들리는데 뚫릴 대로 뚫린 창문으로 냉기만 스며드네.
아침이 되어서야 강산의 정기를 한번 마셨으니 인간 세상에서 벽곡의 신선이 되려 시험하는가.
*벽곡은 신선이 되기 위해 곡식을 먹지 않고 수련하는 방법.
*안락성에서 안락하지 않게 밤을 지냈음을 풍자했다.
13. 즉흥적으로 읊다(卽吟 즉음)
坐似枯禪反愧髥 風流今夜不多兼 (좌사고선반괴염 풍류금야부다겸)
燈魂寂寞家千里 月事肅條客一첨 (등혼적막가천리 월사숙조객일첨)
紙貴淸詩歸板粉 肴貧濁酒用盤鹽 (지귀청시귀판분 효빈탁주용반염)
瓊거亦是黃金販 莫作於陵意太廉 (경거역시황금판 막작어릉의태염)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 리인데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오릉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오릉(於陵)에 살았던 청렴한 선비.
14. 훈장 (訓長 훈장)
김삿갓은 방랑 도중 훈장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훈장에 대한 그의 감정은 호의적이지 못해서
얄팍한 지식으로 식자(識者)인 체하는 훈장을 조롱하는 시가 여럿 있다.
世上誰云訓長好 無烟心火自然生 (세상수운훈장호 무연심화자연생)
曰天曰地靑春去 云賦云詩白髮成 (왈천왈지청춘거 운부운시백발성)
雖誠難聞稱道賢 暫離易得是非聲 (수성난문칭도현 잠리이득시비성)
掌中寶玉千金子 請囑撻刑是眞情 (장중보옥천금자 청촉달형시진정)
세상에서 누가 훈장이 좋다고 했나. 연기없는 심화가 저절로 나네.
하늘 천 따 지 하다가 청춘이 지나가고 시와 문장을 논하다가 백발이 되었네.
지성껏 가르쳐도 칭찬 듣기 어려운데 잠시라도 자리를 뜨면 시비를 듣기 쉽네.
장중보옥 천금 같은 자식을 맡겨 놓고 매질해서 가르쳐 달라는 게 부모의 참마음일세.
15. 산골 훈장을 놀리다 (嘲山村學長 조산촌학장)
山村學長太多威 高着塵冠揷唾排 (산촌학장태다위 고착진관삽타배)
大讀天皇高弟子 尊稱風憲好明주 (대독천황고제자 존칭풍헌호명주)
每逢兀字憑衰眼 輒到巡杯籍白鬚 (매봉올자빙쇠안 첩도순배적백수)
一飯횡堂生色語 今年過客盡楊州 (일반횡당생색어 금년과객진양주)
산골 훈장이 너무나 위엄이 많아 낡은 갓 높이 쓰고 가래침을 내뱉네.
천황을 읽는 놈이 가장 높은 제자고 풍헌이라고 불러 주는 그런 친구도 있네.
모르는 글자 만나면 눈 어둡다 핑계대고 술잔 돌릴 땐 백발 빙자하며 잔 먼저 받네.
밥 한 그릇 내주고 빈 집에서 생색내는 말이 올해 나그네는 모두가 서울 사람이라 하네.
*풍헌(風憲)은 조선 시대 향직(鄕職)의 하나.
16. 환갑 잔치 (還甲宴 환갑연)
환갑 잔치집에 들린 김삿갓이 첫 구절을 읊자 자식들이 모두 화를 내다가 둘째 구절을 읊자 모두들 좋아하였다. 셋째 구절을 읊자 다시 화를 냈는데 넷째 구절을 읊자 역시 모두들 좋아하였다.
彼坐老人不似人 (피좌노인불사인) 疑是天上降眞仙 (의시천상강진선)
其中七子皆爲盜 (기중칠자개위도) 偸得碧桃獻壽筵 (투득벽도헌수연)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 같지 않으니 아마도 하늘 위에서 내려온 신선일 테지.
여기 있는 일곱 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니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를 훔쳐다 환갑 잔치에 바쳤네.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는 천 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로 이것을 먹으면 장수하였다
17. 원생원(元生員 원생원)
김삿갓이 북도지방의 어느 집에 갔다가, 그곳에 모여 있던 마을 유지들을 놀리며 지은 시이다.
日出猿生原 猫過鼠盡死 (일출원생원 묘과서진사)
黃昏蚊첨至 夜出蚤席射 (황혼문첨지 야출조석사)
해 뜨자 원숭이가 언덕에 나타나고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밤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대네.
*구절마다 끝의 세 글자는 원 생원(元生員), 서 진사(徐進士), 문 첨지(文僉知), 조 석사(趙碩士)의
음을 빌려 쓴 것이다.
18. 공씨네 집에서 (辱孔氏家 욕공씨가)
臨門老尨吠孔孔 知是主人姓曰孔 (임문노방폐공공 지시주인성왈공)
黃昏逐客緣何事 恐失夫人脚下孔 (황혼축객연하사 공실부인각하공)
문 앞에서 늙은 삽살개가 콩콩 짖으니 주인의 성이 공가인 줄 알겠네.
황혼에 나그네를 쫓으니 무슨 까닭인가. 아마도 부인의 아랫구멍을 잃을까 두려운거지.
*구멍 공(孔)자를 공공(개 짖는 소리), 공가(姓), 구멍이라는 세 가지 뜻으로 썼다
19. 허언시 (虛言詩 허언시)
靑山影裡鹿抱卵 白雲江邊蟹打尾 (청산영리녹포란 백운강변해타미)
夕陽歸僧계三尺 樓上織女낭一斗 (석양귀승계삼척 누상직녀낭일두)
푸른 산 그림자 안에서는 사슴이 알을 품었고 흰 구름 지나가는 강변에서 게가 꼬리를 치는구나.
석양에 돌아가는 중의 상투가 석 자나 되고 베틀에서 베를 짜는 계집의 OO이 한 말이네.
*사슴이 알을 품고 게가 꼬리를 치며, 중이 상투를 틀고 계집에게 OO이 있을 수 있으랴. 허망하고
거짓된 인간의 모습을 헛된 말 장난으로 그림으로써, 당시 사회의 모순을 해학적 으로 표현했다.
20. 구월산가
去年九月過九月 지난 해에도 구월에 구월산을 구경하고
今年九月過九月 올해도 구월에 구월산을 구경하니
年年九月過九月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구경한다
九月山光長九月 구월산 경치가 언제나 구월이로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哀愁(애수)가 녹아있는 이 감상적인 詩情(시정)은 구태여 몇 번이고 의식적으로 되풀이 쓰인 숫자 九 때문에 담담한 觀照(관조)로 승화되어 있다. 이처럼 비개성적인 숫자의 사용은 해학적인 효과를 얻은 표현상의 기교에 끝나지 않고 無限(무한)과 有限(유한)에 관한 객관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 주제의식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으로 뒷받침되어 서정적인 詠嘆(영탄)이 밝은 達觀(달관)의 시세계에로 까지 끌어올려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영원한 햇수, 즉 무한집합에 있어서는 1, 2, 3, 4.....라고 셈하는 것, 무한으로 흘러가는 세월 속에 해학 詩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무한과 유한에 대한 어떤 철학적인 성찰이 울분에 찬 이 詩句(시구) 속에 담긴 것 같습니다.
公子님 왈 ~
自知면 慢知고, 補知면 早知라!(스스로 알려면 늦게 깨우치고, 남이 도와주면 빨리 깨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