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야봉은 초겨울이 예쁘고, 노고단은 골안개 낀 능선이 사진 ‘뽀인뜨’고, 천왕봉은 가을에 중봉에서 바라본 뒷모습이 최고랑께….”
전남 구례군청 김인호씨(53)는 군청 사진 담당 공무원이다. 아버지에 이어 2대째 군청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밭이랑처럼 굵은 주름과 검게 그을린 얼굴은 천생 농부의 모습이지만 정작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다. 군청 행사와 홍보 관련 사진을 담당한다. 구례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산은 놀이터이자 일터다. 봄이 되면 노오란 산수유꽃을 카메라에 담고, 여름에는 원추리꽃이 만개한 노고단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가을에는 붉게 물든 피아골 단풍을 찾아가고, 겨울에는 눈 덮인 지리산 능선을 타고 넘는다.
김씨가 사진을 하게 된 것은 군청에서 사진을 담당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군청 일로 촬영 나가는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산과 들판을 함께 누볐다. 산수유꽃 곱게 핀 상위마을과 천년고찰 화엄사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땀 흘려 오른 노고단 정상에서 바라본 운해는 장엄하고 황홀했다. 그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카메라 한 대를 손에 들려주었다. 김씨는 그 카메라로 소풍 때면 친구들의 얼굴도 찍고, 굽이도는 섬진강과 구름으로 덮인 지리산의 풍경을 필름에 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퇴직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청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공무원이 된 후로 김씨는 지리산을 더 자주 찾았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카메라가 든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올랐다. 서쪽 최고봉 노고단과 동쪽 최고봉 천왕봉 사이 100리 능선 길을 수없이 넘나들었다. 사진을 찍다가 렌즈가 굴러 깨진 적도 있고 옷이 젖어 추위에 떨기도 했다. 겨울 새벽에는 여명의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며 언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김씨가 지금까지 지리산에 오른 횟수는 천 번이 넘는다.
“사진을 찍고 난 뒤 현상된 필름을 확대경으로 볼 때가 가장 떨리는 순간이제. 색상이 맘에 들게 나왔을 적에는 희열을 느낄 정도로 가슴이 찡했제.”
김인호씨가 지리산 왕시루봉에서 촬영한 섬진강 운해. |
변화무쌍한 지리산은 그에게 땀과 감동을 주는 피사체였다.
김씨가 구례와 지리산의 풍경을 담아온 지도 올해로 27년째. 그는 한자리에 뿌리를 박고 풍진 세월을 견뎌온 고향마을 느티나무를 닮았다. 한마을, 한고장의 시간을 우직하게 기록하며 늘 그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는 7일부터 산수유마을을 주제로 구례예술회관에서 첫 사진전을 연다. 앞으로도 피아골, 노고단, 섬진강 등을 주제로 1년에 한 번씩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퇴직 후에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사진들도 찍어보고 싶당께….” 때로는 사람도 풍경이 된다.
<구례 | 사진·글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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