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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김세원] 길 위의 사람들

바람아님 2015. 11. 25. 00:19
국민일보 2015-11-24

초겨울의 길목에서 내리는 비에 음울하고 시린 기운이 감돈다. 꽃이 지는 것은 눈으로 보지만 낙엽이 지는 것은 가슴으로 느낀다고 했던가. 비에 젖어 길 위에 뒹구는 낙엽은 그 빛깔이 더욱 선명하고 고와 애처롭기까지 하다.

뒹구는 낙엽을 보니 길 위의 한 사람이 떠오른다. 주말에 막힌 도로를 운전하고 가는데,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선을 위태롭게 걸치고 도로변 풀섶에 쪼그리고 앉아 가상의 누군가와 따뜻했던 지난 기억이라도 나누는 것인지 연신 뭔가 중얼거리며 허공에 빈 손짓을 해대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찬 이슬을 맞으며 잠들게 될 밤에 대비한 것인지 두툼한 겨울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노숙인. 그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도심 콘크리트 빌딩숲 공원에도, 외곽의 크고 작은 공원에도 뒤안길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그들은 그렇게 존재한다. 어떤 결핍으로 인하여 길 위를 떠도는 인생이 되었을까. 살아온 시간만큼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지친 몸을 끌고 목적도 방향도 없이 다니다 뼛속까지 얼게 할 깊은 겨울은 어찌 나려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석양은 아름다운 그림이지만, 잠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저들에겐 고통을 알리는 알람일 수 있다. 개인의 문제로 또는 사회적인 문제로 인하여 노숙인이 되었지만 한때는 잘 살아보려고 재빨리 흐르는 시간을 탓하며 세상을 향해 달음박질쳤을 것이다. 비켜간 행운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을 때 좌절감이 얼마나 컸을까.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기를 하다 엎친 데 덮치기 식의 어려움이 겹쳐 무너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족을 떠올리고 뒤엉킨 세월을 기억해내며 회한은 얼마나 클까.

 

돌봄과 치유가 필요한 영혼이 거리에 방치되고 있는데, 또 다른 하나의 삶으로 여기며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들의 삶이 길 위를 떠돌다 끝나지 않도록 의미와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은 없을까.


김세원(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