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중 러브콜 받는다는 한국 외교의 실상
중앙일보 2016-1-12대중 외교에 공을 많이 들인 박근혜 정부의 노력을 중국이 모르진 않을 것이다. 중국은 한·미·일 3각 공조체제에서 약한 고리인 한국을 떼어내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한·중 관계를 중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전통 우방인 미·일에선 ‘친중 외교’ ‘중국 경사’란 얘기까지 나왔다. 국내에서도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축복”이라고 자평했다.
박근혜 정부의 균형외교 선택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경제적 이유도 그렇지만 북핵 협력에 대한 기대도 크다. 양국 정상회담에 북핵 문제가 오르지 않은 적은 없다. 우리가 중국 역할에 대한 주문을 거른 적도 없다. 중국이 북핵 해결의 만능 열쇠는 아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 원유 소비량의 90% 안팎, 부족한 식량의 상당량을 공급하는 나라다. 문제는 북핵 반대 입장을 단호하게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절실한 이 시점에 중국에 대한 기대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우선 양국 정상 간엔 전화 통화 기약조차 없다. 지난해 말 국방장관 사이에 핫라인이 열렸지만 개통 일주일도 안 돼 먹통이다. 중국은 아예 전화를 안 받는다. 외교장관 통화는 실망이 크다. 왕이 외교부장이 윤 장관에게 강조한 대화 해결 등의 3원칙은 기존 입장 그대로다. 오히려 이례적으로 결일불가(缺一不可·하나라도 빠져선 안 된다)란 사자성어까지 보도자료에 넣었다. 윤 장관이 했다는 “상응하는 대가” “강력한 결의”는 사라졌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을 언론과 똑같은 시간에 알았다는 군과 정보기관은 국민의 걱정거리다. 4차 핵실험 전 미국의 북한 전문 사이트인 38노스는 풍계리의 새 갱도 굴착을 분석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수소탄을 보도했다. 하지만 국가정보원과 군 정보 당국은 “신빙성이 없다”고 무시했다. 정부는 “북한이 은밀하게 준비 활동을 해서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이게 외교와 안보에 성과가 크다고 자평하는 보수 정부가 할 얘기인가.
나라 외교가 지도자 간의 개인적 친분으로 움직이진 않는다. 물론 더 냉정한 시각으로 중국을 봐야 한다. 하지만 한·중 정상 간엔 왜 전화 통화조차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정부가 부풀려 놓은 기대감의 영향이 크다. 최상의 한·중 관계가 박근혜 정부의 외교 성과라던 게 엊그제다. 정보 실패가 왜 자꾸 반복되는 것인지도 찾아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준비 중인 대국민 담화엔 이런 심각성에 대한 엄정한 판단이 담겨야 한다.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더듬이에 생긴 문제다. 하루빨리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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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허구로 드러난 '역대 最上 한·중 관계'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
조선일보 2016-1-12정상 간 통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핵실험 다음 날인 7일 미·일 정상과 전화를 했지만 시진핑 주석과는 의견 교환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 역시 우리 측 요청에 중국 측이 반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 간에는 지난 8일 저녁의 외교장관들의 전화 통화가 핵실험 이후 이뤄진 대화의 전부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70분 통화는 서로 생각이 달라 겉돌기만 했다. 윤병세 장관은 '강력 제재'를 거듭 요청했지만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는 그 후 왕이 부장의 말 몇 마디만 짧게 언론에 전했다. 중국 외교부는 11일 미국 전략폭격기 B-52의 한반도 전개에 대해서도 '절제'와 '신중한 행동'만을 요구했다.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이 우리 입장대로 움직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중국이 북에 강한 압박을 가하기 힘들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상 간 통화와 군사 핫라인 가동까지 거부하고 있는 것은 국제 관계의 상식을 크게 벗어나는 일이다. 작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서방국가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가며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이후 조성됐던 한·중 우호 분위기도 이번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문제는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우리 외교 당국의 단견(短見)이다. 윤병세 장관은 작년 7월 한·중 관계를 "역대 최상"이라고 했다. 그는 "미·중 사이에서 러브콜을 받는 것은 축복이라 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작 위기 상황이 펼쳐지자 한·중 관계의 밑바닥에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외교 책임자가 역대 최상이라고 했던 평가가 몇 달 만에 허공으로 사라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한·일 관계에서도 외교팀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30개월이 넘도록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상회담도 없다는 강경 자세를 취하다가 갑자기 지난 연말 정반대 방향의 합의를 해주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의 중국 중시 외교 때문에 미국에서는 한국의 중국 경사(傾斜)를 의심하는 시각이 대두됐다. 결정적인 순간에 중국의 본심이 드러난 지금 우리는 대일(對日) 외교에 이어 대중 전략도 방향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정권 출범 3년 만에 미국, 중국, 일본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설정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이래서야 어떻게 우리 외교가 대외적으로는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고, 대내적으로는 국익(國益)을 최대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외교팀의 오판(誤判)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당장 외교팀을 교체하고 새로운 외교 전략을 다듬어야 한다. 만약 대통령의 잘못된 지침이 이런 외교 참사를 불러왔다면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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