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29 김기천 조선비즈 논설주간)
美 퍼듀대 경제과 김재수 교수
N포세대·노오력·헬조선 등 '주류 경제학'으로 해결책 찾아
"공정 경쟁 보장하는 시장돼야"
99%를 위한 경제학ㅣ김재수 지음ㅣ생각의힘ㅣ384쪽ㅣ1만5000원
'아프리카의 절대 빈곤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가 정부 정책 효과를 분석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결과가 좋을 것으로 기대했던 정책인데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반응했다.
그로 인해 기아와 질병을 줄이는 데 실패했다.
발표를 듣던 경제학자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안타깝네요"가 아니라 "흥미롭군요"였다.'
미국 퍼듀대에서 미시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재수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다.
수학 모델과 통계의 세계에 갇혀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동료 경제학자들의 모습을 살짝 꼬집은 것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다른 전공 학생들보다) 더 이기적이고 공공성이 떨어진다'는
행동경제학의 실험 결과를 소개한 다른 글도 있다.
김 교수는 작년 초부터 대학 강의안을 토대로 다양한 주제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경제학' 'N포 세대의 경제학' '헬조선의 경제학' '노오력의 경제학' 등 사회·경제 이슈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담은 글이 많다. 페친이 늘어나고 '좋아요' 반응이 많아지면서 출판 제의가 들어왔다.
페이스북에 연재했던 글에 항목을 추가하고 살을 덧붙여서 나온 책이 '99%를 위한 경제학'이다.
이 책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잘 다루지 않는 주제에 천착하면서 '경제학자들은 왜 보수의 편을 더 많이 드나'를 비롯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자는 "반골 정신이 경제학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한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꿰뚫어 봐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권력과 권위 또는 관습에 의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시장경제는 공정한 경쟁을 요청한다. 공정한 경쟁이 잘 작동하면, 각각 다른 색깔 옷을 입은 채 조화를 이룬 사진 속 집단 구성원처럼,
모두 하나가 되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노동한 만큼의 임금을 받는 이들이 많아지고, 분하고 억울한 이들은
줄어들 것이다. 1%가 아니라, 99%를 위한 경제학이 저자의 학문적 욕망이다. /Getty Images 이매진스
전반적으로 진보의 색채가 강하게 느껴진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분노'를 표시하고 '저항'을 말하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주류 경제학의 논리와 문법을 사용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보수와 진보의 틀에 구애 받지 않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경제학의 균형 개념이 가르치는 정신은 겸손"이라며 "세상사는 너무 복잡하고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시장'에 대한 저자의 언급은 이런 균형감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시장을 거부할 수 없는 게 경제학자들의 운명"이라고 했다.
'시장'과 '시장 실패'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법원·검찰 고위직 출신의 억대 수임료 논란이나 비정규직 차별 등은 시장경제가 낳은 문제가 아니라
시장의 실패로 인한 문제라는 것이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시장과 시장 실패를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시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믿고 곧바로 정치적 해결책을 들이댄다.
좋은 사람들이 권력을 잡아야 하고, 법과 규제로 문제를 해결하고, 구호를 통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경제학자들이 진보 측 주장을 더 매섭게 비판하는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고 했다.
반대로 보수 진영의 오류는 시장과 기업을 동의어로 사용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에 부담을 주는 규제는 무조건 폐지해야 한다며 정책 효과를 오독(誤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원조 시장주의'와 '짝퉁 시장주의'를 구분하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했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공정 경쟁에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보수 진영의 골수 시장주의자 중에서도 "경쟁자(기업)가 아닌 경쟁 체제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몇 걸음 더 나간다. "시장이 완벽하게 효율적이면 기업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비현실적 이야기로 들린다.
'기업 없는 시장'은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극단적 주장의 또 다른 사례가 아닐까.
이 책은 시사성 있고 음미할 만한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그중 하나로 우리나라 국무회의 풍경이 있다.
장관들이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대통령의 '깨알 지시'를 받아 적기에 바쁘다.
미국 백악관에서 볼 수 있는 토론은 전혀 없다. 왜 그럴까.
이해관계가 다른 하급자가 능력이 뛰어날 경우 상급자는 권한을 전혀 위임하지 않고 명령만 내린다는 게
조직경제학의 연구 성과다.
그래서 저자는 국무회의의 완전 통제 시스템은 박근혜 대통령과 장관들의 이해관계가 상당히 다르고,
장관들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런 흥미로운 예시가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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