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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 기행] (10) 영국 캔터베리‥중세말 성지순례, 神보다 관광이 목적이었다는데…

바람아님 2013. 8. 13. 12:42

 

"화려한 스테인글라스 파이프오르간 장엄한 소리

오락거리가 없던 당시 성당은 환상적 무대"                


옛날 옛적에 사람들은 여행길의 무료함을 어떻게 달랬을까? 바로 길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다. 요즘은 '1인 1바보상자 시대'라

저마다 무료할 틈이 없어 혹 옆사람한테 말이라도 걸었다간 가시 돋친 눈에 마음이 찔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몇 년 전

만 해도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할 때 옆자리에 앉은 낯선 이와 대화를 즐겼다. 무료함과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길손

들과의 허물없는 대화는 오랜 세월 여행이 간직해온 쏠쏠한 매력이자 장점이었다.

중세 사람들도 그랬다. 영국의 문호 제프리 초서가 쓴 《캔터베리 이야기》에는 당시의 그와 같은 풍조가 잘 드러나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13세기 말 런던의 서더크에 위치한 한 여관에 29명의 순례객이 모여들었다. 그 여관은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해 늘 순례객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대륙의 크리스천이 예수 그리스도의 묘가 있는 예루살렘이나 야고보의 유골이 안치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날 때 영국의 기독교도들은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순례를 떠났다. 이 성당이 영국 최고의 성지가 된 것은 1170년 성 토머스

베킷 대주교가 교회의 권한을 축소하려 한 헨리 2세에 맞서다 암살된 이후였다.

서더크 여관에 모인 자들의 면면을 보면 최상류 계급인 기사,수녀원장,본당 신부에서 수도사,탁발승,상인,요리사,

대학생,변호사,소지주,선장,의사,바스 출신의 여인,방앗간 주인까지 초서 당대의 사회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다.

마음씨 좋고 교양을 갖춘 여관집 주인은 손님들에게 자신도 순례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순례길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야기 경연을 펼친 후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날 모두가 공동 부담해 한턱 내자고 제안한다.

이들이 거침없이 쏟아낸 24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근대 이행기 삐거덕대는 영국 사회의 속살을 들춰볼 수 있다.

제비뽑기로 결정된 첫 번째 이야기할 사람은 순례자들 중 최고의 신분인 기사였다. 그는 고대 테베의 두 기사인 아르시테와

팔라몬이 테세우스왕의 처제인 에밀리를 두고 벌인 비극적이면서도 영웅적인 결투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기사의

이야기가 기억해둘 만한 것이라는 데 이구동성으로 찬성을 표했다.

 


사회를 보던 여관 주인은 사회적 신분을 고려해 다음 바통을 수도사에게 넘기려 했다. 그러자

난데없이 술이 거나하게 취한 방앗간 주인이 끼어들어 기사에 못지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며

큰소리친다. 여관 주인이 지체가 높은 분이 먼저 이야기하도록 하자고 타이르지만 방앗간 주인은

막무가내로 버티며 그럴 경우 일행에서 이탈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이 작은 불협화음은 평민이

기사에게 겁 없이 대들어도 될 만큼 당시 영국의 신분제가 동요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탁발승은 가난한 자들의 돈을 갈취하는 종교재판정의 호출인이 악마를 만나 지옥으로 끌려간다는 이야기를 한다.

호출인은 이에 격분해 환자에게 돈을 털려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한 탁발승 이야기로 응수한다. 그 뒤를 이어 바스의 여인은

자신이 다섯 번이나 결혼했다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면서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다시 결혼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추한 노파와

결혼하게 된 한 기사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들의 가장 큰 소망은 잠자리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탁발승과 호출인의 언쟁은 극에 달한 교회의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바스에서 온 여인의 이야기는 중세 말

이미 여권신장에 대한 열망이 사회 저변에서부터 싹트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이렇게 순례자 일행은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동조하면서 유쾌한 순례의 여정을 이어간다. 사실 초서가 살았던 중세 말이 되면

성지순례의 종교적 동기는 상당 부분 퇴색된 채 일종의 유흥 수단으로 성격이 변질되고 있었다.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었던

중세에 성지순례는 중요한 유람의 수단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당시 성지에 세워진 거대한 성당은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비는 성소였지만 한편으론 최첨단의 스펙터클을 구경할 수 있는

거대한 무대였다. 중세 말로 갈수록 교회의 부패와 맞물려 기독교도들의 이탈이 가속화되자 교회 지도부는 이들을 다시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성당을 화려한 무대로 치장했기 때문이다. 성당 내부에 들어선 순례객이 아침 햇빛을 받은 스테인드글라스의

황홀한 색상과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의 바이브레이션이 자아내는 시각적,청각적 판타지를 통해 받았을 충격을 상상해보라.

캔터베리는 런던에서 남동쪽으로 90여㎞ 지점에 있다. 캔터베리에는 기원전부터 켈트족이 정착해 집단을 이루고 있었는데 현재

와 같은 격자형의 도시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1세기 로마인의 정복에 의한 것으로 지금도 그때 세워진 성의 유적지를 볼 수 있다.

캔터베리 관광의 핵심은 두말할 것 없이 캔터베리 대성당이다. 영국성공회의 총본산인 이 성당은 영국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시도 다른 곳에 넘겨준 적이 없다. 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기차역에서 내려 성 마가렛 거리를 따라가면 되는데 채 1㎞도

되지 않을 만큼 가깝다.

화려한 망루형의 크라이스트 처치 게이트를 지나면 곧바로 육중한 로마네스크 양식과 화려한 고딕 양식이 혼재된 성당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성당 동쪽 성벽 밖에는 6세기 로마에서 파견된 성 오거스틴이 세운 수도원의 폐허가 무상한 세월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캔터베리의 진짜 매력은 도시 자체가 풍기는 서민적 분위기에 있다. 건물들은 기껏해야 3층밖에 되지 않으며 서로 다닥

다닥 붙어 있어 마치 사이 좋은 오누이 같다. 대로라고 해봐야 2차선밖에 되지 않으며 그 사이로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

쳐야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좁은 골목길들이 방문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그 벽 안의 이방인에게 살가운 인사 한마디

건네는 건 어떨까.

여행길에 나선 당신.올 여름엔 낯선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에 푹 빠져보시길! 초서의 작품에서 만난 중세 말 인물들처럼.

정석범 미술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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