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09 강천석 논설고문)
'자신에게 불리한 게임 규칙' '상대에게 불리한 게임 규칙'
'여론 만들어가는 포퓰리즘' '여론 뒤쫓아가는 포퓰리즘'
인터넷에 들어가면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문재인 후보 지원에 나섰다'는 영상을 찾을 수 있다.
마이크를 잡은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문재인 변호사를 이렇게 소개했다.
"사람들이 '노무현이가 대통령감이 되겠나' 할 때 '나도 감이 된다'고 당당하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친구를 가진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 후보 아니겠습니까."
노무현은 취임 후 자신의 친구를 자리를 바꿔가며 5년 내내 곁에 뒀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아무튼 '정치인 노무현'을 문재인보다 가까이서 보고 영향을 주고받았던 인물은 없다.
요즘 문재인을 바라보고 있으면 '노무현 친구가 맞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노무현은 정치의 여러 고비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게임 규칙'을 서슴없이 받아들였다.
이런 무모(無謀)함이 반전(反轉)을 만드는 노무현의 힘이었다.
도저히 받지 못하리라고 보고 던졌던 제안을 덥석 받아들여 상대의 허(虛)를 찔렀다.
노무현은 거의 무명(無名)과 다름없는 바닥에서 시작했다.
문재인처럼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실장'이란 계단과 '노무현 세력'이라는 거대 조직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기득권층(旣得權層)이 아니었다.
2002년 가을 대통령 후보 노무현은 벼랑에 매달려 있었다. 봄부터 기운 지지율은 되살아날 줄을 몰랐다.
당(黨) 밖에는 이회창 대세론(大勢論)이 도도했다.
당 안에선 후보 교체론이 탈당 사태로 이어졌다.
월드컵 개최 바람을 타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안(代案) 후보 정몽준 지지율이 선두로 치솟았다.
노무현-정몽준 사이의 후보 단일화밖에 길이 없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저조(低調)한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후보 자리에 연연하면 본선(本選)에서 낙선이다.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방안을 수락하면 예선(豫選) 탈락이다.
노무현은 절벽에서 손을 놓고 여론조사 방식을 받아들였다.
대통령 노무현은 그 벼랑에서 만들어졌다.
탄핵 이전(以前) 문재인은 거국내각을 주장했다. 대통령이 비슷한 카드를 내밀자 퇴진으로 입장을 바꿨다.
국회가 퇴진 일정을 잡아달라니까 이번에는 탄핵으로 돌아섰다.
탄핵 발의(發議)이후엔 탄핵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 심판 절차를 기다리지 말고 즉각 퇴진하라고 나왔다.
그의 대리인(代理人)인 당 대표는 대통령 탄핵이 이뤄지면 다음으론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국무총리를 탄핵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했다. 퇴진하면 명예는 지켜주겠다던 장담은 국회가 형사처벌에 앞장서야 한다는 쪽으로 변했다.
비(非)헌법적·초(超)헌법적 발상이란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도표(圖表) 한 장으론 문재인의 입장 변화를 다 담기 힘들 지경이다.
이 대목에서 '정치인 문재인'을 '정치인 노무현'의 거울에 비춰 보게 된다.
대통령 탄핵안이 예상보다 훨씬 큰 표차로 국회에서 가결된 어제,
차기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지지율은 20%였다. 반기문도 20%, 같은 당 이재명 성남시장은 18%였다.
백만 촛불이 여섯 차례 서울 도심을 휩쓸어 가고, 대통령 지지도는 한 달 반 가까이 5%대를 기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지지도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뜰 줄을 모른다.
사실은 간단한 수수께끼다. 문재인은 촛불 정국의 최대 기득권자로 비치고 있다.
기득권자의 정치 노선은 어디서나 '지금 이대로 더 빨리'다.
변화를 바라는 민심(民心)은 기득권자 마당에 내려앉지 않는다.
문재인은 여의도를 출발한 탄핵 열차에 올라탄 동승자(同乘者)의 하나일 뿐이다.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거국내각·책임총리·대통령 자진 사퇴가 거론될 때 위험을 떠안고 받아들였다면 정
치적 주도권을 행사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를 등장시키는 야당의 자기모순(矛盾) 사태도 빚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을 피하려다 기회도 걷어찼다.
문재인은 현행 헌법의 미비점(未備點)을 보완하자는 주장을 불순한 의도로 몰았다.
만일 그가 안팎의 예상을 뒤엎고 개헌론의 중심에 섰더라면 구(舊)질서의 기득권자에서 새 질서를 이끄는
도전자(挑戰者)로 탈바꿈도 가능했을 것이다.
정치인 노무현은 '자신에게 불리한 경기 규칙'을 받아들여 기회를 만들었다.
문재인은 '상대에게 불리한 경기 규칙'에 집착하고 있다.
노무현은 여론을 만들었고, 문재인은 여론을 뒤쫓아 간다.
노무현 대통령이 'FTA는 이념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라고 지지층을 설득하고
'국가 없이 평화를 지킬 수 없고 무장 없이 국가를 지킬 수 없다'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시작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결코 부끄럽지 않은 결정'이라고 이라크 파병을 옹호할 수 있었던 것도
여론은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주장들이 5년 후 자신의 자랑스런 친구에 의해 뒤집히리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같은 포퓰리즘이라도 천양지차(天壤之差)다.
'時事論壇 > 時流談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스크에서] 중국의 통일전선전술 (0) | 2016.12.11 |
---|---|
[터치! 코리아] 사무라이의 칼, 선비의 끈기 (0) | 2016.12.11 |
[만물상] 탄핵 투표 '인증샷' 논란 (0) | 2016.12.09 |
[위기의 대한민국…] "권위주의 아닌 민주적 보수로 내각제·완전국민경선 도입을" (0) | 2016.12.08 |
[사설] 文 "탄핵돼도 즉각 하야하라"라니, 권력욕은 거두길 (0) | 2016.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