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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여자들끼리 묻어달라는 마쓰바라씨

바람아님 2017. 5. 30. 09:53
조선일보 2017.05.29. 03:13
김수혜 도쿄 특파원

7년간 해외근무 하고 귀임한 일본 대기업 부장 야마다 히로유키(가명·46)씨에게 "오랜만에 와보니 요새 신입 사원은 뭐가 다르냐"고 물었다. 야마다씨가 "차 사는 후배가 없더라"고 했다. "저희 또래는 취직하면 차부터 샀어요. 여자 친구 사귀려고요. 이젠 안 사던데요."


차만 안 사면 좋은데, 연애와 결혼까지 덩달아 관심 끊는 20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메이지야스다생명보험 복지연구소가 20~30대 미혼 남녀 1200명에게 '애인 있느냐'고 물었다. '있다'는 사람이 남자는 다섯에 한 명, 여자는 셋에 한 명이었다. 20대 남자 과반이 '태어나서 한 번도 누굴 사귄 경험이 없다'고 했다. 30대 남녀 중에 '결혼하고 싶다'는 사람이 반이 안 됐다. 그러니 마흔 되고 쉰 넘어도 결혼 안 한 사람이 어딜 가나 숱하다. 40대 일본 남녀 세 명 중 한 명, 50대 일본 남녀 여섯 명 중 한 명이 미혼이다. 우린 아직 이 정도는 아니다. 40~50대 한국인 중 결혼 안 한 사람은 열 명에 한 명이 될까 말까 한다.


그래도 우린 벌써 집마다 난리인데, 정작 일본은 조용하다. 결혼 안 하는 일본 남녀에게 "언제 갈 거냐"고 물으면 실례다. 명절에 모여도 우리나라 부모·형제처럼 "너 때문에 잠이 안 온다"고 대놓고 한숨 쉬지 않는다. 일본 부모라고 속이 안 탈 리 없다. 20년 가까이 독신자 지원 단체를 이끌어온 일본 작가 마쓰바라 준코(松原惇子·70)씨가 "내가 젊었을 땐 일본 부모도 닦달했다"고 했다. 닦달하던 부모도 닦달당하던 자식도 다 함께 머리가 희어지면서, 중간 어느 시점부턴가 결혼 아닌 다른 얘기를 하게 된 것뿐이다.

일본 도쿄 긴자 중앙로를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조선일보 DB

마쓰바라씨 세대 이전에도 혼자 사는 사람은 있었다. 대개 태평양전쟁 때 약혼자가 사망해 평생 혼자 산 경우였다. 그와 달리 마쓰바라씨 세대는 전후 고도성장기에 독신을 선택했다. 그들은 이제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마지막엔 어떻게 하지?'를 더 고민한다. 마쓰바라씨는 그래서 17년 전 도쿄 교외에 '여성 전용 묘지'를 마련했다. 가족 납골당에 들어가 몇 번 본 적 없는 조카에게 뒷일을 맡기느니, 같은 처지 싱글끼리 함께 쉬자는 취지다. 450명이 유료 예약을 마쳤다. 지금은 비슷한 묘지가 전국에 여러 곳 더 생겼다.


경기가 풀리고 정책을 잘 짜면 이런 현상이 사그라질까. 마쓰바라씨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했다. 결혼이란 애초에 국가가 끼어들 일이 아닐 수 있다. 끼어들어 봤자 딱히 도움 되더란 증거도 없다. 아베 총리가 아무리 인구 유지를 호소해도 야마다 부장 후배들은 그 나이 때 야마다 부장처럼 '나도 얼른 차 사고 집 사고 결혼해야겠다'고 하지 않는다. 일본 광역단체 47곳이 결혼 지원 사업에 올 들어 첫 넉 달에만 23억엔을 썼지만 관련 참가자 60만명 중 결혼까지 간 커플은 1만쌍이 못 된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마쓰바라씨가 근본적 질문을 툭 던졌다. "김상, 부모님이 행복해 보였어요?" 서구에선 전부터 좋으면 같이 살고 싫으면 갈라섰다. 반대로 일본인은 '참는 게 결혼'이고, '결혼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결혼했으니 행복해져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에 서구보다 독신자가 더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