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7.21 박혜원 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혜원아 생일 축하해." 이맘때면 어김없이 오던 문자메시지.
음력으로 생일을 기리다 보니 해마다 날을 따져봐야 하지만, 큰이모는 이런 번거로움에도 매년 정확한 날짜에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내 주셨다.
이제 다시는 받을 수 없는 메시지. 그리운 마음에 애꿎은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린다.
어릴 적 동네에서 수퍼마켓을 하던 큰이모 댁에 가서 자주 놀았다.
큰이모는 틈나는 대로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주로 고양이 '나비'와 귀신 얘기였다. 가게를 지키는 고양이 '나비'는 젊을 때 매우 날래고 용감했다고 한다.
잡은 쥐를 절대 먹지 않고 주인 앞에 가져다 놓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모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톱을 세워 고양이처럼
벽을 타고 오르는 흉내를 내셨다. 벽을 타기엔 이미 늙은 고양이었지만 얘기를 듣는 동안 나비는 내 상상 속에서
지붕을 휙휙 날아다니는 용맹스러운 동물이었다.
큰이모의 이야기는 귀신이 등장할 때 더 흥미진진해졌다. 이모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봐 왔던 귀신들.
귀신이 이모를 둘러업고는 문지방을 넘지 못해 몇 번씩 허탕치는 대목은 어찌나 생생한지 자연히 숨을 죽여야 했다.
이야기는 두 번째 세 번째 고비로 이어졌고, 이모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곤 했다.
"귀신을 보거든 무조건 이모를 불러. 이모가 꼭 쫓아낼게."
어린 내게 그 말은 "무조건 네 편이 돼 줄게"와 같은 의미로 들렸다.
귀신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다. 그것이 태생적인 것인지, 큰이모가 들려준 무용담의 영향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이모가 들려준 각양각색의 귀신이 공포 대신 상상력을 선물해준 건 분명해 보인다.
큰이모의 너른 이야기 숲에서 자란 덕에 나는 동화를 읽고 쓰는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지개 켜던 고양이 나비의 모습이 생생해지는 나른한 오후, 큰이모의 긴 이야기와 짧은 문자메시지가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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