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7.12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여자친구와 여행, 배 일찍 끊기는 섬이 최고… "오빠 믿지?"
"엄마·아빠는 너를 믿는다"는 말도 믿음 아닌 내 의지의 강요
타인 관점으로 세상 보고 '나와 다른 생각' 이해가 선행돼야
대학 시절, 여름방학이면 '일찍 배가 끊기는 섬'이 최고였다.
마지막 배가 떠난 항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여자 친구에게 진짜 착한 표정으로 "오빠 믿지?"를
연발했던 기억이 있다면 '우리 기쁜 젊은 날'이다.
그렇게 '손만 꼭 잡고 잔' 그 여자 친구는 이튿날 보니 2박 3일은 족히 지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다.
그때 그 '오빠 믿지?'의 청춘들이 이제 늙수그레 엄마, 아빠가 되어 자식들에게 수시로 그런다.
"엄마는 아들을 믿는다!" "아빠는 우리 딸을 믿는다!" 젠장, 그런 믿음은 없다.
서로 잘 알면서 도대체 왜 그러는가?
요즘 여수에 마련한 화실에서 바다를 보며 이런 생각만 자꾸 한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이제 나도 '나름 화가'다. 단기 대학 출신이지만 그래도 '일본 유학파'다.
나이 오십 넘어 시작한 미술 공부를 4년 만에 마치고 지난해 여수에 정착했다.
"뭐 하고 사냐?"는 질문에 약간 심드렁한 표정으로 "여수 바닷가에서 그림 그려요!" 하는 게 무척 폼 날 것 같아서다.
그런데 정작 여수에서 지내다 보니 전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예전처럼 책 읽고, 글만 쓴다.
화실이 없어서였다. 화가가 화실이 없으니 그림을 안 그리는 거다.
그래서 횟집 하다가 망해 창고처럼 버려진 곳을 아주 싼 월세로 얻었다.
여수에서 가장 크고 멋진 화실을 가진 박치호 화가가 부지런히 발품 팔아준 덕분이다.
창고를 대충 수리하고, 캔버스를 마주하고 있으니, 그림은 안 그리고 또 딴생각이다.
창문 너머 바다가 너무 좋아서다. 바다는 '뻘'이 있어야 진짜다. 물론 동해나 제주 바다도 좋다.
그런데 옆에 있으면 남들의 부러운 눈길을 즐기지만 정작 둘만 있으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그냥 '예쁜 여인'이다.
'뻘'이 있는 바다는 다르다. 수시로 변한다. 매번 정말 좋다. 진짜 '아름다운 여인'이다.
더구나 내 화실은 석양이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여자만(汝自灣)' 끝자락이다. 이름이 어찌 또 '여자만'인가.
그래서 '오빠 믿지?' 같은 야릇한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런데 사람은 그런 식으로 믿는 거 아니다.
‘여자만(汝自灣)’의 ‘배 빨리 끊기는 섬’들. /그림 김정운
심리학에 '틀린 믿음 실험(false-belief-test)'이라는 게 있다. 다양한 버전이 있지만 실험 구조는 대략 이렇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인형극을 한다. 인형은 책을 읽다가 화장실에 가야겠다며 '오른쪽의 파란 통'에 책을 두고 나간다.
인형이 나간 사이 책을 '왼쪽의 빨간 통'으로 옮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화장실을 다녀온 인형이 책을 어느 통에서 찾겠느냐고 묻는다.
'내가 보는 세상'과 '남이 보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 '오른쪽의 파란 통'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내가 보는 세상'과 '남이 보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면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왼쪽의 빨간 통'이라고 대답한다. 대충 4세가 되면 '오른쪽의 파란 통'이라고 대답한다.
타인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능력이 대략 4세부터 생긴다는 뜻이다.
발달심리학자들은 '4세'라는 나이와 관련해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이 문제가 아니다.
이 실험이 '틀린 믿음(false-belief)'에 관계된다는 사실이다. 타인이 나와는 '다른 생각', 경우에 따라서는 '틀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진정한 신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타인에 대한 '믿음'은 타인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믿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 강요다.
'엄마는 믿는다' 또는 '아빠는 믿는다'고 이야기할 때, '자녀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부모·자식 관계만이 아니다.
타인은 언제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를 되뇌어야 배신당하지 않는다.
타인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은 항상 자기 생각만을 강요한다. 그리고 나중에 꼭 그런다.
"정말 믿었던 이가 등에 칼을 꽂았다"고. 그러나 '등에 칼을 꽂는다'는 표현도 함부로 쓰는 거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독일군 사령관이었던 루덴도르프는 "전쟁에 병사들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는데
배후의 사민주의자, 유대인이 병사들 등에 칼을 꽂았다"고 불평했다.
히틀러는 이 '등에 칼 꽂기(Dolchstoß)'를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해 적극 퍼뜨렸다.
'등에 칼 꽂기'는 의도가 악하기 그지없는 참으로 고약한 표현이다.
타인을 이해하려면 일단 급하지 않아야 한다.
차분하게 상대방 마음을 얻을 생각은 않고, 어떻게든 빨리 어찌해보려니 '배 빨리 끊어지는 섬'이나 찾아다니며
"오빠 믿지?"를 연발하는 거다.
그래서 '여수만만(麗水漫漫)'이다. '여유만만(餘裕滿滿)'이 아니다. 끝없이 펼쳐진 여수 앞바다와 섬을 보며 드는
'지루할 정도로 평온한 생각'이다. 물론 마냥 착한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도 했다.
남자가 '둘째로 싫어하는 것'은 '소매치기'다. 그렇다면 남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음…… '당·일·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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