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배달민족은 남북이 으르렁
합리와 지혜로 북핵 위기 넘기고
분열·분단 악몽 깨어나 하나 돼야
최근 중국불교협회 부회장 푸정(普正) 스님의 초청으로 란저우(蘭州)에 들렀다가 실크로드를 따라 우루무치(烏魯木齊)의 천산까지 둘러보고 왔다.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요사이 중국이 크게 깨어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중국 어느 곳을 가나 부강·민주·문명·자유·평등 같은 사회주의 핵심가치를 제시해 중국 번영에 매진하는 분위기였다. ‘중국의 꿈이 나의 꿈이다’ ‘중화민족은 한 가족이다’ ‘각 민족이 석류알처럼 뭉쳐 하나 되자’ 같은 구호를 외치며 곳곳에서 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이처럼 중국은 민족이 달라도 하나 되자 하는데, 우리는 같은 배달민족이니, 한민족이니 하면서도 남북이 갈라져 원수처럼 대적하고 살아야 하는가? 거기에다가 끝없는 대량 살상 파괴 무기 개발 경쟁이나 하는가?
요사이 남과 북이 고강도 폭언을 주고받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은 불안으로 신경과민증이라도 걸리기 십상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대적하고 살아야 하는가? 거기에다가 남남 갈등까지 가세해 조선시대 그 허구한 날을 당쟁으로 지새우며 국가를 패망케 한 모습이 되살아난 듯하다. 이 외환내우의 현실을 그대로 방치한다는 말인가? 국가 대의로 하나 될 수는 없는 것인가? 합리 경쟁으로 승화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이러한 때에 네 탓 타령밖에 길이 없단 말인가?
결코 돌파구가 없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악조건 속에서도 지혜가 있으면 길은 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배 12척의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을 일궈 내지 않았던가? 남북한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배 12척의 상황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찾지 못하고 희망을 일궈 내지 못한다면 이는 합리와 지혜를 포기하는 것이며 현실 안주의 타성일 뿐이다.
수 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둘러본 일이 있다. 넬슨 만델라는 백인들의 엄청난 가해를 받으면서 종신형을 받고 27년이나 옥살이를 한 투사였다. 그러나 끝까지 백인을 배척하지 아니하고 함께 평등한 삶을 주장했고, 그 결과 대선에서 대통령이 된 후에는 당시 백인 대통령을 부통령으로 영입했다. 내각도 흑인·백인을 두루 쓰면서 남아공의 평화를 일궈 냈고, 처음 약속한 임기를 마치고 미련 없이 퇴임했다. 그리하여 남아공은 물론 세계의 백인·흑인 모두의 숭앙을 받았다. 그를 그토록 핍박한 영국 정부가 그의 생일에 초대해 최고 예우를 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만델라의 사례에서 나라가 하나 되고 남북이 하나 되는 묘방을 찾아야 한다. 희망을 찾아야 한다.
방향을 부산으로 향하면 부산에 도달하고 목포를 향하면 목포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이치다. 우리는 분단으로 갈 것인가? 하나를 향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나라가 하나 되고 남북이 하나만 되면 유라시아 대륙 모두가 가까운 경제 영토여서 무한한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다. 상상을 뛰어넘는 국운 웅비의 호기를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좋은 여건을 포기한 채 남북 대결과 네 탓의 꿈속에서 불장난만 하고 살아야 하는가? 한반도는 땅덩이가 좁아 핵을 지상에서 폭발시키면 도망갈 곳이 없다. 민족 공멸이다. 그래도 핵이 있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합리적 주장을 외면하다가 큰 곤욕을 치른 사례가 수없이 많다. 그 몇 가지 예만 들어본다.
임진왜란 전 부국강병 10만 대군의 양병 주장을 외면하다가 임란 7년의 곤욕을 치렀고, 구한말 개화 주장을 묵살한 결과 36년간 식민 치욕을 겪었으며, 광복 초기 단일정부 수립의 주장을 수용하지 못한 결과 6·25전쟁과 분단 고초의 이 역사에서 여태껏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합리를 외면한 대가는 이토록 혹독하다.
그러므로 합리의 지혜를 금이요 옥이요 받아들이는 사회는 희망이 있고, 합리를 외면하는 사회는 어둠이 있을 뿐이다. 방향을 올바로 잡은 사회는 나아갈수록 광명이요 영광이지만, 권모술수가 기승하는 사회는 어둠과 치욕이 있을 뿐이다. 원리가 이러한데 우리는 지금 어느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우리 민족이 한 차원 더 성숙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합리로 성숙한 사회, 준법으로 성숙한 사회, 더불어 함께하는 문화로 성숙한 사회, 서로 안아서 그동안 겪은 아픔을 녹여 내는 성숙한 사회로 진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이 아픈 분단 역사를 100년대까지 끌고 가야 할 것인가?
증오의 대결을 극한으로 이끌고 가면 종착점은 민족 공멸일 뿐이요, 서로 안아서 하나 되는 길로 나아가면 우리 온 민족의 활로가 열리고 영광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제 분열과 분단의 악몽에서 깨어나자. 그리고 남북 모두 ‘우리 어떻게 하나 될 것인가’ 깊이 고민하자.
이광정 원불교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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