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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45) 밀레의 ‘접붙이는 사람’

바람아님 2018. 2. 3. 17:13

(경향신문  2011. 11. 02)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45) 밀레의 ‘접붙이는 사람’


ㆍ네 배나무를 접 붙이거라!

 
이상하지요? 밀레의 저 그림은 돌아가시기 직전의 할머니를 연상시킵니다. 할머니는 치매였습니다.

종종 피난보따리를 쌌고, 또 종종 할머니보다 10년 먼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무엇보다도 호불호가 명확해졌습니다.

싫은 사람은 아파트 문턱에서 쫓겨났고, 좋은 사람은 돌아가기 힘들었습니다.

하루 하루가 전쟁이었습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처럼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공격적이 된 할머니가 예전에 그 화초를 좋아하던 심성 고운 할머니로

돌아온 것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그 날 할머니의 시선이 머문 곳은 베란다에서 크고 있는 큰 화분이었습니다.

가지 꺾인 나무를 한참 바라보며 만져주던 할머니는 실패를 찾으시더니 조심스럽게 가지의 꺾인 부분을 실로 꿰맸습니다.

마지막으로 초록색 크레용으로 흰 실 부분을 칠하는 것으로 나무 수술을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선사처럼 “나, 간다, 준비해라!”는 말씀을 던져놓고는 일주일을 무심한 표정으로 누워 있다가

머나먼 길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의 그 일주일이 할머니에 대한 나쁜 모든 기억을 압도하는 것을 보면

할머니에게도 그 작디작은 생명의 의식이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경건한 의식이었나 봅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 ‘접붙이는 농부’, 1855, 캔버스에 유채, 80.5×100㎝, 알테 피나코테크, 뮌헨
장 프랑수아 밀레 ‘접붙이는 농부’, 1855, 캔버스에 유채, 80.5×100㎝, 알테 피나코테크, 뮌헨


몰입해서 나무 수술을 했던 할머니처럼 나뭇가지에 몰입하고 있는 저 농부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제목처럼 접붙이고 있는 겁니다. 접붙인다는 건 나무의 가지나 눈을 잘라서 다른 나무에 옮겨 붙이는 것입니다.

나무가 보다 건강해지도록 하는 것이지요. 제대로 접붙이면 나무는 당연히 더 좋은 열매를 맺겠지요?


생명에 관여하는 저 농부, 보십시오! 의례를 집전하는 성직자 같지 않습니까?

매 주일 교회에 가서 생명의 신을 찬양하고 생명의 신께 기도를 올린다 해도 자기 집 앞마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할

나무의 접을 붙이는 지금 저 농부의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능가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하나 저절로 시선이 가는 것은 저 농부의 행위를 지켜보는 아내와 아이입니다.

저런 든든한 시선의 지지를 받으면 농부의 행위가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사랑스러워질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몰입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남편의 혹은 아버지의 섬세한 손길을 바라보며 성장한 사람들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성장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더불어 저들 사이에서 차곡차곡 뿌리 내린 정은 또 얼마나 깊은

것이겠습니까? 아이를 안고 남편의 손길에 빠져있는 여인의 포스가 든든하기만 한 것이 아이가 얼마나 든든하게

성장할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밀레는 저런 분위기에서 성장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밀레의 아버지는 자상하고 반듯한 남자였다지요?

그는 아름답게 피어나는 생명들을 보면 홀린 듯 오래오래 바라보며 빠져드는 무심한 농부였다고 합니다.

“프랑수아, 저 나무 좀 봐라! 세상에, 꽃보다 아름답지 않니?”

어린 시절 저런 아버지를 가졌다면 출세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자존감을 가지지 못할 수는 없겠습니다.


밀레는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좋아했습니다. 단테도 지옥을 여행할 때 베르길리우스의 영혼과 함께했지요?

아마도 베르길리우스는 지옥 같은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지옥 같은 세상을 견디며 통과하며,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는 시인이었나 봅니다. 저 그림의 구체적인 계기가 된 베르길리우스의 시는 이것이었습니다.


“네 배나무를 접붙이거라!  다프니스여, 네 자손들이 그 열매를 딸 터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는 내게 가장 소중한 아이를 통해 받을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나의 감수성은 내 아이들이 놀아야 할 마당입니다.

기원전 30년, 베르길리우스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로마의 농촌을 살리는 길이 생명이라 믿었고,

19세기의 밀레는 생명의 대한 감수성이야말로 인격의 중심이고 인간의 미래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생명에 충실한 자 생명을 거두고, 죽음에 충실한 자 죽음을 거둘 것입니다.

지금 내가 거두고 있는 것은 또한 내가 뿌린 씨앗이기도 합니다.

삶은 정직하고, 내가 심어둔 과거는 어떤 모양으로든 나를 찾아오니까요.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경향신문 2011.1.02 ~ 2011.12.21)


< 명화를 철학적 시선으로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


(1) 반 에이크 ‘수태고지(경향신문 2011.01.02) 

(2) 클림트의 ‘다나에(2011.01.09)

(3) 벨라스케스 '거울을 보는 아프로디테'(2011.01.16)

(4) 샤갈의 ‘거울’(1915)(011.01.23)

(5) 안토니오 카노바의 '에로스와 푸시케'(2011.01.30)


(6) 루벤스 '잠든 에로스를 지켜보는 푸시케'(2011.02.06 20)

(7)수잔 발라동 '아담과 이브'(2011.02.13)

(8) 렘브란트 ‘탕자의 귀환'(2011.02.20)

(9) 루벤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2011.02.27)

(10) 엘리후 베더의 ‘스핑크스의 질문자'(2011.03.06)


(11) 폴 고갱 ‘신의 아이'(2011. 03. 13)

(12) 고흐 ‘슬픔'(2011. 03. 20)

(13)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2011. 03. 27)

(14) 밀레의 만종(2011. 04. 03)

(15) 조지 클라우센 '들판의 작은 꽃'(2011. 04. 10)


(16) 렘브란트, 십자가에서 내려짐(2011. 04. 17)

(17)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2011. 04. 24)

(18)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2011. 05. 01)

(19)조르주 드 라 투르의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2011. 05. 08)

(20) 들라크루아의 ‘격노한 메데이아'(2011. 05. 15)


(21) 워터하우스의 아리아드네(2011. 05. 22)

(22) 티치아노의 ‘유디트’(2011. 05. 29 )

(23)이 시대의 오르페우스, 임재범(2011. 06. 05)

(24) 모로의 ‘환영’(2011. 06. 12)

(25)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2011. 06. 19)


(26)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는 카미유’(2011. 06. 26)

(28) 조르주 로슈그로스의 ‘꽃밭의 기사’(2011. 07. 03)

(29)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2011. 07. 10)

(30) 고흐의 ‘해바라기’(2011. 07. 17 18:10)


(31) 모네의 수련 연못 (2011. 07. 24)

(32) 르누아르의 ‘빨래하는 여인들’ (2011. 07. 31)

(34)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2011. 08. 10)

(35) 오처드슨의 ‘아기도련님’  (2011. 08. 17 )


(36) 렘브란트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  (2011. 08. 24 )

(36) 마티스의 ‘원무’ 

(38) 앙리루소 ‘뱀을 부리는 여자’ (2011. 09. 14 21:17)

(39) 앙리 루소 ‘잠든 집시여인  (2011. 09. 21)

(40)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 (2011. 09. 28)


(41) 폴 세잔 ‘수욕도’  (2011. 10. 05)

(42) 번 존스 ‘코페투아왕과 거지소녀’  (2011. 10. 12)

(43) 쿠르베 ‘상처 입은 남자’  (2011. 10. 19)

(44)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2011. 10. 26)

(45) 밀레의 ‘접붙이는 사람’   (2011. 11. 02)


(46) 뭉크의 ‘절규’   (2011. 11. 09 21:0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092103325


(47) 조지 프레더릭 왓츠의 ‘희망’   (2011. 11. 1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162051265


(48) 샤갈의 ‘떨기나무 앞의 모세’   (2011. 11. 3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302103105


(49) 고갱의 ‘과일을 들고 있는 여인’(2011. 12. 0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2072102435


(50) 브뤼겔 ‘베들레헴의 인구조사'(2011.12.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221205713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