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미래, 경쟁력이 있어야 생존하는 시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직장인들은 코딩학원에 몰려간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경쟁에서 자국 산업이 뒤처지면 국민경제가 위협 받는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성공 사례들을 치열하게 벤치마킹 한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미국을 보며 자유시장경제 체계를 정립했고, 독일과 일본을 통해 자동차ㆍ철강ㆍ조선 등 '중후장대' 산업을 육성하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것이 그렇다.
'청출어람'의 시기도 있었다. 2010년 우리나라는 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한국기업들이 눈부신 성과를 내자, 선진국들의 부러움을 샀다. 일본도 그 중 하나였다. 그해 3월4일 일본의 대표 일간지 중 하나인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는 '세계로 약진하는 한국기업에 배우자'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한국은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일본 사회에서 이런 사설이 나온 것에 오히려 우리도 놀라워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서는 한국기업과 산업정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국실'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하기까지 했었다. 기업들 사이에서도 '한국기업 배우기'가 열풍이었다. 삼성전자를 배우겠다고 오는 일본기업은 부지기수였고, 도요타와 닛산은 현대차 신제품을 분해해 품질과 비용구조를 연구했다. 일본의 백화점 업계는 사상 처음으로 한국 주요 백화점에 조사단을 파견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만 7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어떠할까?
상황은 다시 역전되고 있다. 일본은 재도약을, 우리는 침체일로를 겪고 있는 모양새다. 일자리만 봐도 그렇다. 한국은 '구직난', 일본은 '구인난'이다. 한ㆍ일 구인배수(구인인원/구직자수, 2017년12월 기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구직자 100명당 일자리가 55개에 그치는 데 반해, 일본은 100명당 일자리가 거의 160개에 달하고 있다. 우리는 최근 5년간 10조원을 투입하고도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기에, 일본의 성공에 더 눈길이 간다.
경상수지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지난해 2007년 이후 최대 흑자를 기록한 반면 우리는 2년 연속 하락세다. 여행수지 차이가 컸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줄곧 우리나라가 앞서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메르스ㆍ사드보복 등으로 주춤하는 사이, 일본은 적극적인 민ㆍ관 협력과 관광규제 혁파를 추진하며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외래객 수만 해도 우리는 1300만여 명, 일본은 약 2900만 명을 기록했다.
다시 배움의 자세로 돌아가야 할 때다. 그들은 아주 영리하게 '경제계'를 활용하고 있다. 소통은 기본이다. 순수민간단체인 게이단렌 회장을 일본 경제정책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시켜 정기적으로 경제계와 교류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전략특구 등 파격적인 규제개선, 법인세율 대폭 인하 등의 정책을 추진하여 일본정부는 일자리 증가, 불황 탈출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국민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전략을 벤치마킹하여 우리도 경제계를 잘 써먹어야 한다. 나라발전에 정부와 민간이 따로 일 수 없다.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재계든 시민 사회든,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볼 일이다. 과감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국을 배우자는 일본 사설이 다시 쓰일 그날을 기대해본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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