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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한국 보수 정치, 南北과 美·北 회담에 어떻게 대응할 건가

바람아님 2018. 5. 1. 08:21

(조선일보 2018.05.01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가난하고 안보 취약했던 한국 '이념적 방어망'인 反共, 최근 상황 변화로 도전에 직면
자유민주주의 가치 수호 위한 반공의 본질적 중요성 不變이나

유연하고 현실적인 대응도 필요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마무리되었다. 몇 달 전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미국과 북한 간 혹시 전쟁이라도 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우리 사회에 팽배했던 때를 생각하면 남북의 정상이 만나 전쟁은 없다고 선언하고

평화와 상생을 이야기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론의 뜨거운 반응 역시 이런 심정의 발로일 것이다.


정상회담을 두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위장 평화 쇼'라고 비판했고, 보수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는

시선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앞선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와 공존을 이야기하면서도 뒤로는 몰래 핵무기를

개발했던 과거 경험을 생각할 때, 이번 북한의 태도를 두고 '속임수'나 '위장 평화 공세'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일은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향후 어떻게 일이 진행되어 나갈지 두고 보아야 할 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또 다른 협상의 주체인 미국 때문이다. 과거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미국의 우려나 관망 속에서 이뤄진 것이라면, 이번에는 미국의 큰 관심과 개입 속에 이뤄졌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대해 큰 관심을 표명했고,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진짜 기회'에 대한 기대감을 밝힌 바 있다. 현실적으로 정전 상태의 종식이나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된 사안은 미국과

북한 간의 만남에서 풀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향한 징검다리로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나친 낙관론일 수 있지만 미국과 북한 간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핵 문제가 만족스럽게 해결되고, 미국과 북한 간,

그리고 일본과 북한 간 정상적인 관계 개선이 이뤄지게 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할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서로 싸웠던 미국과 중국이 오래전 국교를 정상화했고, 베트남과 미국도 1995년 양국 관계를 정상화했다.

유사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정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과거 한국의 보수는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안보상으로 취약했던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싸우면서 일하자'는 구호가 그 당시 절박했던 우리 사회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반공(反共)은, 때때로 독재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지만,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내기 위한 중요한 이념적 방어망이었다.


이처럼 한국의 보수 정치는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속에서 반공을 핵심 가치로 하며 나라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 간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정세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다면 보수 정치는 또 다른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도덕성과 통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손상된 상태에서

미국과 북한 관계에 변화가 발생한다면, 반공이라는 보수의 중요한 정체성이 위협을 받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보수 정치의 생명력은 시대적 흐름을 읽고 그러한 변화에

유연하고 현실적으로 대응하는 데 있다. 영국의 스탠리 볼드윈 총리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사회주의가 유행하고,

국내 정치적으로는 노동당이 자유당을 제치고 보수당의 경쟁자로 부상하던 시기에 보수당을 이끌었다.


볼드윈은 당시 '새로운 보수주의'를 제창하면서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려고 했고, 정치적으로 새롭게 떠오른

노동당을 '적색(赤色)'이나 '볼셰비키 정당'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와 좌파 정당의 부상이라는 편치 않은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보수 정치의 자신감(自信感)과 유연(柔軟)한 대응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최근의 상황 변화 속에서 한국 보수의 반공주의는 녹록지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반공이 인권과 자유, 법의 지배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중요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변화의 흐름을 주시하면서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우리나라 보수 정치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