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1.02 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3차 산업혁명 전환 성공했지만
4차 산업혁명은 방향성 不在와 관료적 무능력으로 수렁 빠져
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한 해를 마치는 분위기가 새해를 좌우한다면 올해는 근래 최악일 것이다.
청년 실업, 규제 개혁 답보, 성장 동력 창출 난망, 최저임금을 둘러싼 을(乙)과 을 대립, 갈등 조장으로
연명하는 정치권 등…. 뭐 하나 좋은 소식이 없지만 제일 우울한 것은 비관의 만연이다.
송년회 여기저기서 "급변하는 글로벌 상황과 기술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그간 쌓아올린 것들을
날리고 말 것"이라는 불안이 토로되었다.
그러나 한번 돌아보자. 한국은 지난 60년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을 지속한 지구 상의 유일한 나라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자랑스러워 할 이유가 충분하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저력을 의심할 이유도 없다.
지금의 우리를 만든 근원적 역량이 무엇인지, 무엇을 재건해야 하는지를 꼽아보는 것이 새해의 시작으로 더 걸맞다.
국가의 지속 발전을 위해서는 '야망'과 '시야'가 필수라 알려져 있다.
저임금 기반 경공업으로 산업화를 일으키는 것은 절대 빈곤의 탈출을 가능케 할 뿐 글로벌 수준의 최첨단 기술력을
갖겠다는 '야망'이 있어야 성장이 장기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에서 무엇이 통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바깥을 살피고 시도하는 '시야' 역시 중요하다.
특히 산업 지형 자체가 급변할 때는 더 그렇다.
3차 산업혁명기를 떠올려 보라. 정보 통신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한국은 성공적인 전환으로
첨단 대열에 합류했고, 그것이 지금 선진국 대접을 받게 된 바탕이다.
1998년 손정의와 빌 게이츠를 초청해 외환 위기 후 경제 재건 방안을 묻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들은 초고속 인터넷만이
살 길이니 그것으로 세계 1등이 되라고 제안했다.
그 요지는 커다란 기술 변화의 흐름이 몰려올 때 그것에 올라타는지가 국가의 흥망(興亡)을 좌우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 충고를 전격 수용했다는 김대중 정부의 IT(정보기술) 투자가 실상은 오래전부터 진행된 체계적 노력의
일부였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우리 정부는 정보 수퍼 하이웨이 정책이 미국에서 막 대두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새로운 경제 질서의 출현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종합 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상공부, 과학기술처, 체신부의 관련 업무를 통합해 정보통신부를 신설하고, 전파 규제를 완화해 산업 생태계를 조성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선다'는 당시의 야심 찬 구호는 강력한 리더십과 효과적 추진 체계를 대변해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4차 산업혁명은 그 변화의 폭과 충격이 이전의 모든 전환을 압도할 것이라 예측된다.
그런데도 공유 경제가 부상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택시 카풀 서비스 갈등을 보면 정부의 방향성도 없는 데다
관료적 무능력, 정치적 포퓰리즘까지 더해져 오리무중이다.
며칠 전 국토부 장관이 기존 택시 운전자에 한해 우버 앱을 적용하겠다고 한 것은 기술 변화의 본질에 대한 정부 내 인식이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불특정 다수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자원을 자유로이 이용하는 것이
공유 경제 흐름인데, 진입 제한을 확실히 하겠다니 그야말로 시대 역행이다.
야당 의원들은 카풀 서비스를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하는 법안을 경쟁적으로 제출해놨다.
택시업계는 '무조건 안 된다식' 단체행동 중이고, 국민은 이들에 대한 거부감을 여과 없이 표출하고 있다.
혼란과 갈등이 이렇게 깊은데도 기술 변화 대응 방향을 제시한다는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각계 이해를 조율한다는
노사정위원회는 일언반구도 없다.
새로운 흐름이 형성될 때의 대전제는 그 흐름을 이용해 소득을 창출하고 일상이 편리해지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시도들이 결국 신산업의 우위를 선점해 더 많은 이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방향성을 분명히 하면서 기존 종사자의 피해를 보전하기 위한 사회적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전환기의 핵심 도전이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되살려야 하는가.
정부 주도로 큼지막한 정책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권위주의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그로 인해
초래된 힘의 공백이 더 높은 능력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민주화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된다.
정부와 기업·국민 모두 이 양면성을 인지하고 역량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이다.
세계를 주시하며, 세계의 최첨단을 뚫겠다는 '야망'으로 다시 무장하되 서로를 깊이 '배려'하는 것,
이것이 새해의 결심이자 쇄신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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