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한반도 정찰記>新애치슨라인 그어지나

바람아님 2019. 1. 3. 08:08
문화일보 2019.01.02. 15:20



주한미군 감축·철수론 급부상

‘개입주의 반대’ 美 여론 강해

美 빠지면 한반도는 힘의 공백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명령을 내리고,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이에 반발해 사표를 던지자,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군을 믿고 시리아 내전에 참여했던 쿠르드족(族)은 공황 상태에 빠졌으며, 일본·이스라엘 등 ‘주요 비(非)나토 동맹(MNNA)’ 국가들은 물론 영국·독일 등 나토(NATO) 회원국들도 미국의 동맹 정책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도 대규모 감축될 것이란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다음은 주한미군 차례란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이 발을 빼기 시작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성향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 일반 여론의 ‘포퓰리즘적 반영’인 측면이 강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미국인은 개입주의 노선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이 각각 17년과 15년이 넘었건만 끝날 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미국인’의 피와 재산이 소수 ‘글로벌리스’의 이익 추구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한국·일본·독일과 같은 ‘부자 나라 안보 무임승차론’이 힘을 얻고 있다.


또, 존 미어샤이머의 최신 저서 ‘대망상(The Great Delusion)’이 화두가 되고 있다. 미어샤이머는 ‘리버럴 헤게모니’를 포기하고 지정학(地政學)에 입각한 현실주의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옛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의 가치와 이념을 확산시키는 정책을 추구해 왔는데, 이는 ‘사회 공학(social engineering)’의 국제적 버전으로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옳은게 아니란 것이다. 이제 미국은 지나친 개입 정책을 중단하고, 한정된 힘을 핵심 이익의 수호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해외 전진기지를 정리하고 ‘역외균형방어(offshore balance defense)’전략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찮다. 로버트 케건은 ‘정글이 다시 자라나고 있다(The Jungle Grows Back)’는 저서를 통해 미어샤이머를 비판하고 있다. 미국이 현 국제 전선에서 퇴각하면 ‘1930년대로 회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케건은 리버럴 헤게모니 대신에 ‘리버럴 질서(liberal order)’란 개념을 사용한다. 리버럴 질서는 정원(garden)처럼 자연적이 아닌 인위적인 것이며, 따라서 미국이 정원사(gardener) 역할을 포기하면, 정글(jungle)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1930년대 상황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듯이, 결국 정글화된 세계질서는 미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1969년 괌 독트린(닉슨 독트린) 때도 미 방어선이 후퇴한 적이 있다. 그 결과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가 공산화됐다. 당시에도 주한미군 철수론이 제기됐으며, 실제로 미 제7사단이 철수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주적(主敵)은 옛 소련으로서, 한반도가 아시아 주(主)방어선이었으며, 이에 전면 철수는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가상 주적은 중국이다. 주전선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물론 대중(對中) 전진기지로서 평택 미군기지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옛 소련과 대치하던 시절에 비해 한반도 역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감소한 것도 사실이다. 방어전략의 초점이 해상방어로 옮겨질 경우, 한반도의 전략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대규모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한 지휘소연습(CPX)으로 한정되고 있다. 그리고 한미연합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이에 따른 한미연합사 성격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주한미군사령부는 한국작전전구(KTO·Korea Theater of Operations)에서의 독자적 작전능력을 보장받는 통합전투사령부(Unified Combatant Command) 지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이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작년 미·일 연합군사훈련 규모가 눈에 띄게 커진 것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실제적 최전방 방어선이 일본으로 후퇴하고, 한반도의 미군 기지는 전투지역전단(FEBA) 앞에서 시간을 벌거나 적을 교란하는 일반전초(GOP)와 유사한 역할로 전락할 수 있다.


1950년 1월 발표된 애치슨라인이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毛澤東)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 6·25전쟁이 발발했듯이, 신(新)애치슨라인이 그어지면 가공할 사태가 올 수 있다. 미군이 빠지면 생길 수 있는 ‘힘의 공백’은 남북 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 때문에 미군을 빼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지는 최근 미국에서 진행되는 논의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일본과는 ‘레이더 논란’에 빠져 있다. 한반도 안보의 기본 구도가 통째로 흔들리는 2019년 한 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