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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태의 퍼스펙티브] 청년들의 서울 쏠림 해소해야 저출산 현상 해결된다

바람아님 2019. 1. 14. 08:21


중앙일보 2019.01.14. 00:05


맬서스·다윈, 밀도 높은 지역선
생존 위해 출산 억제된다 설파
청년 취업 경쟁 치열해지자
본인 생존 위해 재생산 억제
극심한 서울 쏠림 현상으로
청년의 심리적 밀도는 더 높아
맬서스와 다윈의 지혜 수용해
저출산 대책 세워야 효과낼 것


맬서스·다윈의 저출산 조언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은 17년째 심화하고 있다. 아직 공식 통계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새로 태어난 아이의 수는 32만 명도 채 안 될 전망이다. 2016년 40만 명, 2017년 36만 명이었다. 필자는 올해 출산아 수가 20만 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저출산 현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인지 아닌지를 떠나 기본적으로 출산율에 엄청난 변화가 생겨난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동안 수많은 이유가 제기되었다. 살 집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믿고 맡길 보육시설이 없어서, 여성의 독박 육아 부담 때문에, 저녁이 없는 삶이어서, 일자리가 없어서,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등이 이유로 제시됐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왜 이런 조건들이 지금보다 좋지 않았던 과거에는 저출산 현상이 없었을까?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은 서유럽 국가들은 이런 조건들이 다 좋을까? 서유럽보다 출산율이 더 높은 미국은 그럼 유토피아인가?


이쯤 되면 인간의 저출산에 대해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의견을 내고, 그에 맞추어 이런 정책 저런 정책을 펼쳐 온 것이고, 그 효과도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아닐까? 과연 그런 설명이 있을까? 필자는 그 설명을 각각 인구학과 진화론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맬서스(1766~1834)와 다윈(1809~1882)에서 찾고자 한다.


생존 본능과 재생산 본능의 균형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내용을 배웠을 것이다. 바로 영국 인구학자 맬서스가 그의 연구를 집대성하여 출판한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1826년)에 소개한 내용이다. 빠르게 증가하는 사람의 수가 생산될 수 있는 식량 혹은 자원의 총량을 넘어가면 인구 과잉이 생겨 필연적으로 빈곤이 발생한다는 것도 기억날 것이다. 그런데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주장한 진짜 내용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맬서스는 인간의 역사에서 지역에 따라 어떤 곳은 자녀를 많이 출산했지만 어떤 곳은 적은 수의 자녀만을 원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 사회에서 어떻게 원하는 자녀의 수가 결정되는지 그 원인을 탐구하였다. 그는 출산과 관련하여 시간과 공간이 바뀌어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 원칙 한 가지에 주목했다. 바로 인간의 본능이었다.


인간은 동물로서의 본능을 지니고 있다. 이 본능은 석기시대에도, 그리스·로마시대에도, 중세시대에도, 그리고 18세기 유럽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인간의 본능은 유럽만이 아니라 동양·신대륙·아프리카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었다. 맬서스가 주목한 인간의 본능은 바로 생존 본능과 재생산 본능이었다. 생존 본능은 본인을 위한 것이고, 재생산 본능은 후속 세대를 위한 것이다. 오랜 역사에서 사람들은 본인의 생존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후손을 만들어 왔다. 문화와 제도를 통해 매우 절묘하게 두 본능 사이의 균형을 맞춰왔다.


예컨대 사막지대나 정글지대와 같이 먹거리를 찾기 어려운 곳에서 사람들은 절대로 많은 수의 자녀를 두려 하지 않았다. 먹을 것이 적어 본인의 생존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상 먹거리가 풍족했던 때는 많지 않았다. 결국 인간은 제한된 식량 때문에 언제나 서로 경쟁을 해야 했고, 경쟁이 심한 곳에서는 출산율이 높을 수가 없었다. 본인의 생존 자체가 더욱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맬서스가 탐구했던 지식은 바로 인간의 출산 수준에 대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설명이 가능한 이론이었고, 인간의 본능이 그 답이었다.


생존이냐 재생산이냐 선택 기준은 밀도

많은 독자가 다윈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1859년)을 통해 어떻게 지구 위에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진화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지금이야 당연한 개념이 되었지만, 원숭이와 인간의 뿌리가 같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로써는 지동설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다윈은 그의 진화론의 개념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고 매우 큰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인류는 식량의 양보다 인구의 수가 너무 많아져 본인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면 재생산보다는 인구 조절을 선택했다는 것과, 이 조절 과정에는 끊임없는 경쟁과 투쟁이 있었다는 부분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은 비단 사람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서 동일하게 발생했고, 그 결과로 생존이 되는 종과 생존이 불가능한 종이 구분되었다는 게 진화론의 중요한 요체가 되었다.


다윈은 물리적인 밀도를 한 생명체가 생존을 택하는지, 아니면 재생산을 택하는지 결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봤다. 제한된 공간에 같은 종의 개체가 증가하면 개체 간 경쟁이 심화한다. 심화한 경쟁은 개체 간 투쟁으로 발전되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체는 번식보다는 본인의 생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맬서스·다윈 한국 저출산 조언도 ‘밀도해소’

맬서스가 『인구론』을 통해 그리고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설파한 각각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출산 혹은 재생산과 관련되어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은 생존과 재생산의 본능을 지닌다. 둘째, 물리적인 공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셋째, 물리적인 공간에 존재하는 개체의 수인 밀도가 자원의 양을 결정한다. 넷째, 밀도가 높아 자원이 부족해지면 종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경쟁한다. 다섯째, 생존의 본능은 언제나 재생산의 본능에 우선한다. 마지막으로 맬서스와 다윈의 이론은 어떤 한 시점의 한 사회 혹은 하나의 종에서만 적용되는 설명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적용 가능한 설명이라는 점이다.


만일 맬서스와 다윈이 함께 2019년 한국에 와 1.0도 채 되지 않는 합계 출산율과 50년도 되지 않아 매년 100만 명 출생에서 30만 명 출생으로 줄어든 출산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까?

아마 가장 먼저 나올 이야기는 물리적인 인구밀도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재생산은 기본적인 본능이다. 그런데 본인의 생존 본능에 의해 재생산 본능이 17년 동안 억제되었다는 것은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물리적인 인구밀도가 과거보다 악화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한국 전쟁 이후 계속 증가해왔기 때문에 물리적인 밀도가 악화한 것은 맞다. 하지만 총인구보다 청년 인구의 밀도만 보면 과거보다 현재 상황이 더 좋다. 예컨대 1990년대에 20대는 나이별로 95만여 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75만여 명이 있다. 그런데 인간 사회에서는 모든 연령대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인구라 할 수 있는 대학 학력 인구만 고려해보면, 90년대에 비해 지금의 물리적인 인구밀도가 훨씬 높다. 90년 대학진학률은 35% 정도였고, 절대 수는 약 33만 명이었다. 지금 30세 즈음에 있는 청년들의 2005년경 대학 진학률은 80%에 달했고, 절대 수는 49~50만 명이었다.


두 번째로 나올 이야기는 밀도의 개념이다. 다른 동물들과 인간이 다른 가장 큰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들과 달리 사람은 물리적인 밀도가 높아지면 그 현상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 본인의 생존 가능성을 계산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심리적인 밀도가 발생한다. 만일 물리적인 밀도는 높지만 다양한 이유로 심리적인 밀도가 높지 않으면 생존 본능에 앞서 재생산 본능이 작동할 수도 있다.


저출산 해소는 청년 서울 쏠림 해소로

그 점에서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은 단순히 물리적인 밀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밀도의 문제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어떻게든 서울로 오고자 한다. 과거에는 지방의 많은 인재가 서울 유학보다는 지방 국립대에 진학하는 것을 선호했다. 지금 그런 현상은 사라졌고, 거의 모든 청년은 대학도 직장도 서울에서 다니기를 희망한다. 이렇게 나이도 목적도 비슷한 청년들이 서울로 몰리면 물리적인 밀도뿐만 아니라 ‘정말로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많구나’하는 생각인 심리적인 밀도를 높이게 된다. 이렇게 물리적인 밀도와 함께 심리적인 밀도가 높아진 것이 바로 한국 초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마지막으로 나올 이야기는 한국 정부가 저출산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의 제안일 것이다. 통시적이고 초공간적으로 보았을 때 출산율도 이상적인 자녀의 수도 물리적인 밀도와 역관계를 보였다. 게다가 한국은 청년들의 물리적인 밀도보다 심리적인 밀도가 더 높기 때문에 출산율이 낮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맬서스와 다윈은 한국 정부가 정말로 출산율이 회복되기를 희망한다면 저출산 대응 정책의 중심을 청년들의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밀도를 낮추는 데 두어야 한다고 제안할 것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본능이 영향받는 한 그 어떤 정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좀 회복될 수 있을까? 어떠한 시대 어떠한 지역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출산 수준의 원리를 밝혀낸 맬서스와 다윈의 지혜를 정부가 정책에 잘 녹여주면 가능할 것이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