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을 내세운 국가마다 정책을 철회한다. 전기요금 인상,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의 어려움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일본은 ‘원전가동 제로’를 선언했다. 하지만 일본은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22%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프랑스는 전력 생산에서 75%를 차지하는 원전 비중을 당초 2025년까지 50%로 낮춘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목표 달성 시점을 2035년으로 10년 늦췄다. 미국은 원전 2기를 건설 중이고 영국은 2035년까지 원전 13기 건설을 추진한다.
한국만 거꾸로 간다. 정부는 국가 에너지 백년대계인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탈원전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명문화했다. 구체적인 비율을 밝히지 않았지만 2040년까지 원자력 발전을 대폭 줄인다는 계획이다. 노후 원전 수명은 연장하지 않고 새 원전 건설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에너지 헌법이나 다름없는 20년 계획 기간 중 탈원전 대못을 박은 셈이다. 동시에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7.6%에서 최고 35%까지 늘리기로 했다. 2017년 말 ‘재생에너지 3020’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 비율은 20%였다. 재생에너지는 전력 생산에 대한 변동성과 간헐성이 최대 약점이다. 게다가 태양광·풍력발전용 부지 확보는 난제 중의 난제다.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계획한 태양광 부지는 서울시 전체 면적의 1.8배가 넘는다고 한다. ‘비싼 전기’ 이용에 따른 부담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판이다.
고비용 에너지 정책 탓에 에너지 공기업의 부실이 커진다. 원전 가동 대신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늘리자 연료비가 비싸졌다. 지난해 한전은 208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6년 만의 적자다. 한수원도 5년 만에 102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40년간 공들였던 원전 산업 생태계가 무너진다. 국내 신규 원전 건설 축소로 관련 산업 피해액은 눈덩이로 불어난다. 원전설비를 만드는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내수 기반이 무너진 상황에서 원전 수출은 ‘허황된 꿈’이 될 판이다. 국내 최초로 원전을 수출한 아랍에미리트(UAE)에서조차 10~15년 장기정비계약(LTMA)을 단독 수주하는 일이 차질을 빚게 됐다. 해외 원전 수출 난항으로 ‘원전 산업 선순환’ 길은 막혔다. 정부가 원전 해체·폐기물 관리 등 후행 분야를 육성하겠다지만 엇박자 정책일 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미국·유럽 등에 노후 원전 폐기를 재고하라고 권고했다. IEA는 보고서를 통해 “노후 원전을 폐기하면 전기료가 인상되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4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66% 감소하는 원자력 발전량을 보완하려면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현재 대비 5배 이상 늘려야 한다고 IEA는 추산했다. IEA는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되며 다른 선택지에 비해 경제적인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대선 공약으로 시작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장기적으로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여름철 일상화한 폭염, 제4차 산업혁명 확산을 감안하면 국내 전기 수요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원전 폐기를 재고하라는 IEA의 권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kyh@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2호 (2019.06.12~2019.06.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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