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2019.11.01. 05:00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조지 오웰이 묘사한 ‘동물농장’은 “나는 항상 옳고, 너는 언제나 틀리다”는 일방통행 사회다. 공화국은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다”는 제1계명과 “우두머리 나폴레옹은 절대로 옳다”라는 강령에 따라 움직인다. 오늘날 이성을 잃은 한국사회의 견강부회, 좌충우돌 난장판을 보면 “내 편은 선이고 네 편은 악이다”라고 단정하는 동물농장 랩소디가 울리는 듯하다.
병든 세상이 궤변가를 키웠는지, 협잡꾼이 사회를 병들게 하였는지 전말은 분명치 않다. ‘광화문 함성’과 ‘서초동 촛불’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도 근심스럽다. 두 동강난 조국이 다시 갈라질 것 같은 현실에 대한 염려는커녕 아전인수로 해석하며 상대를 제압하려는 오만과 편견만이 어른거린다.
요설과 변설에 능한 선동가들은 ‘허위를 진실로, 진실을 허위로 둔갑시키는 재주’를 부려 ‘속는 사람들과 속지 않는 사람들’끼리 서로 배척하게 만들어 ‘편 가르기’를 부추긴다. 진실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대중을 우롱하는 수법은 20세기 초 나치, 파시스트, 볼셰비키들이 자주 사용하였다.
요설가들은 어디서나 ‘국민 여러분’을 외치기만 하면 요술피리 변주곡에 홀린 추종자들이 무리지어 따라올 것이라고 착각한다. 자신만이 옳다는 거짓 신념에 빠진 변설가들은 이치에 어긋나는 망발을 하여도 팬덤들의 박수를 열렬히 받을 것이라는 망상에 젖어 있다가 결국 제 무덤을 파고 만다.
말과 행실이 딴판인 인사들이 정의를 부르짖고 거짓훈계를 계속하다 보면 거짓말을 하고도 스스로는 잘못을 느끼지 못한다. 명언집 같은 데서 토막말을 따내 자신이 깊이 고뇌한 것처럼 전파하려 든다. 간지러운 말에 현혹당한 대중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이비 종교의 신도처럼 변해 간다.
남을 꼬집는 이현령비현령의 말과 행동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실제행동과 정면으로 배치되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도 본인은 부끄러운 줄 모른다. 생각 없이 남의 의견이나 문장을 제 것처럼 꾸며대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데도 추종자들은 모른 채 하거나 오히려 옹호하려 드는 광경도 나타난다.
상대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으려다 보니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율배반이 자주 연출된다. 억지논리로 내 편의 구미에 맞는 말만 고르려다 보니 전후좌우가 맞지 않는다. 때로는 일부러 적을 만들기도 하는데, ‘적의 적’을 내편으로 만들려는 수작이다.
제 몸조차 닦지 못해 냄새가 진동하는 협잡꾼이 저만이 이 사회를 개조할 수 있다는 인지부조화 증후군에 빠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억지논리로 사리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을 하더라도 ‘편 가르기 함정’에 매몰된 군중들이 자신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를 것이라는 확증편향에 빠져 있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수치심이 있어서 스스로 부끄러운 행동을 제어한다는 점이다. 지도층 인사들이 파당의 이익에 집착하여 그치지 않고 비이성적 논리를 외치는 장면들을 어떻게 설명할까. 우리나라 국회를 ‘동물국회’라 하다가, 동물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대중이 속아 넘어가야 요설가, 변설가들이 창궐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혹세무민은 궤변가들의 탓만이 아니라 속거나 속아주는 군중들의 잘못도 무시할 수 없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동물농장 광시곡’은 언제쯤이면 그칠까.
권소현 (juddi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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