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체온도 병균도 악수로 교환… 이래서 인간이다

바람아님 2020. 3. 20. 08:50

(조선일보 2020.03.20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세상이 바뀌겠지만 텔레커뮤니케이션이 악수를 대체할 수는 없다
더 가까운 사람과는 키스를 하고 성교를 한다

1917년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전쟁을 치렀지만 인간의 존엄을 배웠고 역사는 계속 굴러갔다
2020년 고통이 지나가면 우리는 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올해 영국아카데미 작품상은 영화 '1917'이 받았다.

이 영화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유럽에서 있었던 제1차 세계대전의 끝 무렵인 1917년에 있었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른 전쟁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에는 서로 죽이는 대규모 전투신이 없다.

주로 영국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적군인 독일군은 영화 내내 다섯 명 정도밖에 나오지 않고,

죽는 사람은 네 명 정도 보여준다. 그런데도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방법은 카메라 기법에 있다. 놀라울 정도로 카메라는 한 병사를 1박 2일 동안 한 번도 안 떼고 연속으로 보여준다. 통

상적으로 영화에서는 '편집'이라는 것이 항상 있다.

카메라를 여러 각도에서 찍고, 여러 시간대 장면을 잘라 이어붙여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든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카메라 편집 없이 '롱테이크'로 하나의 연속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런 카메라 기법 덕분에 관객은 전쟁터 한복판을 걷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모여야 인간이 된다


주인공이 걷는 길 배경으로 보이는 포탄피 수천개를 통해서 대포 소리 한 번 없이 많은 폭격과 사상자를 상상하게 만들고, 텅 빈 집 방구석에 떨어진 아기 인형을 보여줌으로 이 전쟁에서 어린아이가 죽었거나 급하게 피란 갔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을 주인공 반경 수십m 이내 풍경으로 가깝게 영화 내내 보여준다. 주인공과 함께 전쟁터를 두 시간 정도 뛰어다니다가 나온 기분이 들게 만드는 최고의 전쟁 영화다.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영화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이 죽은 동료의 형과 악수하는 장면이다. 두 사람의 악수 장면이 인상 깊게 남은 것은 현재의 코로나 사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악수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두 사람이 같은 뜻을 가졌다는 의미, 나는 너와 만나는 것이 반갑다는 의미, 우리는 하나라는 의미 등등 신체의 작은 일부일 뿐인 손인데도, 맨손을 맞잡는다는 것은 많은 선한 의미를 내포한다.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체온도 병균도 악수로 교환… 이래서 인간이다/일러스트=김성규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악수하는 것이 무례함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모이며 즐거웠던 인간 사회의 모습이

타인을 경계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많은 사람이 타면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더 경계하게 된다.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눈총을 주는

세상이 되었다.

코로나19는 사람이 모이는 것을 금기시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사피엔스가 다른 경쟁 종을 압도한 것은 같은 이야기를 믿고

무리의 크기가 커진 데 기인한다고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인간은 모여야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끊임없이 전쟁이 있었고 새로운 전염병도

끊임없이 돌았다. 14세기 유럽에서는 흑사병의 창궐로

유럽 전체 인구가 4억5천만에서 백년 만에 3억5천만으로

줄었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가량인 1억명이 사망한 것이다.

17세기 정도가 되어서야 인구가 이전으로 회복될 정도로

상처가 깊었다.

하지만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과 예술을 보면

어디에도 흑사병의 어두운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찬란한 인간의 성취가 느껴진다.


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느 시대나 위기가 있고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아도 커다란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도시의 규모는 계속 커져왔다.

2000년 전에는 인구 백만 도시가 로마 하나였지만

지금은 인구 천만 이상 도시가 흔하다.

건축물 하나하나만 비교해보아도, 2000년 전에는

가장 큰 건물이 5만명을 수용하는 로마 콜로세움이었다면

지금 북한의 능라도 경기장은 15만명을 수용하는 규모다.

움집을 짓던 인류는 만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점전

더 큰 건물을 지어왔다. 인간은 모여야 했기 때문이다.

증권시장에서 주가는 올랐다가 내렸다가 부침이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주식시장 전체로 보면 주가지수는

성장한다. 인간 사회의 규모도 증권시장과 같다.

20세기 초반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전쟁을 '세계대전'이라고

불렀다. 어느 시대나 자기가 사는 세상을 채우는

큰 위기를 겪으면 지금이 아포칼립스이며, 세상은 결코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여러모로 세상이 바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모이는 것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텔레커뮤니케이션은 악수를 대체할 수 없다.

악수는 체온을 느낌과 동시에 손에 묻은 병원균을 교환하는 것이기에 상호 신뢰를 뜻한다.

그래서 악수는 장갑을 벗고 한다. 더 가까운 사람과는 침을 교환하는 키스를 한다.

더 가까운 사람과는 유전자를 교환하는 성교를 한다. 현대과학은 인간을 뇌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간은 정신이 전부는 아니다. 생각과 몸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클럽은 붐비고, 텅 빈 극장 한쪽에서는 데이트를 한다.

앞으로도 인간은 계속 모일 것이고, 모여야만 한다. 그것이 사피엔스가 사피엔스가 되는 길이다.

1917년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배웠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계속 굴러갔다.

2020년 전 세계는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많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이도 지나갈 것이고 우리는 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원문보기 :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9/20200319068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