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5.01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국내 대부분 도시개발은 2차원 평면으로 설계
파리·뉴욕은 3차원 입체로 보는 사람들이 만들어
'종북 빨갱이 對 토착왜구'로 싸우는 우리 정치
과거만 보는 '두 보수'만 있고 미래 생각 '진보' 없어
X축만 있는 세상은 좌측과 우측 둘로만 구분
XYZ축으로 세분해 해상도 높이면 다른 세상 보여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도시 설계를 하면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난다. 도시를 평면적으로 보는 사람과 입체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평면적으로 보는 사람은 세상을 토지 이용 계획도로 본다.
종이 위에 지도를 펼쳐놓고 블록을 그린 다음, 상업 지구는 빨간색으로 칠하고 주거 지구는
노란색으로 칠한다. 그 둘은 나뉘어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 도시개발의 모습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풍경은 역세권에는 10층짜리 빌딩에 빼곡히 간판이 들어서 있고
도시 다른 곳에는 아파트 단지가 있는 모습이다.
좋은 도시 만들려면 입체적으로 봐야
이런 도시 설계를 하는 사람은 도시를 2차원 평면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반면 파리나 뉴욕 같은 도시는 1층은 상업, 2층 이상은 주거나 오피스로 구성된 주상복합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곳에서는 1층 가로를 따라서 거리가 형성된다.
이런 도시 설계를 하는 사람은 도시를 3차원 입체로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각각의 방식은 장단점을 가진다.
상업을 한곳에 밀집시키면 주거지는 조용해질 수 있다. 하지만 두 지역을 왕복하는 교통량이 늘어난다.
1층에 상업을 배치한 도시는 보행 친화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 반면 가게 바로 윗집은 소음에 시달릴 수 있다.
결국 복잡한 인간 사회를 담아내야 하는 도시는 이 둘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일러스트=양진경
도시를 더 확대해 보면 빌딩 크기 스케일에서의 문제도
찾을 수 있다. 주차를 위해서 건물 1층에 필로티 주차장을
만들면 거리 풍경을 해친다.
대형 쇼핑몰 같은 건물을 배치하면 거리에 가게 입구가
사라지고 1층 입면이 막혀 있어서 건물 안의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런 건물은 사람들로 하여금 걷고
싶지 않게 만든다. 건물 수준으로 확대해서 세밀하게
살펴보면, 가게 입구, 주차장 위치, 1층의 투명성 등이
도시 환경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도시를 만들려면 입체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좀 더 해상도가 높은 이미지로 도시를 바라봐야 한다.
다른 세상사도 마찬가지다.
과거사는 많고 미래는 부족한 정치
4월 15일 총선으로 향후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정치는 과거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싸웠다.
소련 붕괴 이후 정치권은 좌파 대신 낡은 독재 정권을
타도하는 진보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치 지도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었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진보는 150년 전 독일 철학자의
생각과 1980년대 학생운동 노스탤지어에 머물러 있다.
보수는 한국전쟁과 1970년대 경제성장의 노스탤지어에
머물러 있다.
이들은 서로를 종북 빨갱이와 토착왜구라고 비난한다.
우리 정치에 과거사는 많고 미래 비전은 부족하다.
언제까지 정치가 과거에 대한 심판에 머물러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 고려대학교 총장은 우리나라 정치는 결국 과거만
바라보는 두 보수가 싸우는 중이고 미래를 생각하는
진정한 진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래를 위해서 국민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 정수의 개념에 대해서 배울 때
우리는 좌우로 화살표가 그려진 수평선을 긋고
가운데에 0을 적는다. 0에서 왼쪽으로 갈수록
-1, -2, -3, -4로 점점 음수가 커진다.
0의 오른쪽으로 가면 +1, +2, +3, +4같이 양수가 커진다.
세상을 좌·우나 진보·보수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은 이런 수평선상에서의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정의당, 민주당, 통합당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수평선상에 위치한다.
이게 우리나라 정치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는 1차 방정식의 세상이다.
중학생이 되면 수학의 세상에 Y축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초등학교 때 그렸던 X축에 세로로 Y축을 그리면 2차원 평면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 평면에서 미적분 방정식을 그래프로 그리는 방법을 배웠다. 2차방정식의 세상이다.
X축만 있던 세상은 좌측과 우측 둘로만 나눈다면, XY축은 세상을 4분면으로 나눈다.
오른쪽 위가 1사분면으로 시작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1, 2, 3, 4분면이 만들어진다.
단순하게 세상을 보면 사실 직시 못 한다
X축의 마이너스 영역에서도 Y축의 값이 플러스냐 마이너스냐에 따라서 다른 성격이 부여된다.
예를 들어서 X축은 정치 성향인데, Y축은 소득이라고 보자.
같은 진보 성향의 사람 중에서도 노조 임원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입은 다르다.
위치를 잡는다면 노조위원장은 2사분면에 위치하고 일용직 근로자는 3사분면에 속한다.
보수 진영도 마찬가지다.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부자는 1사분면, 가난한 청년은 4사분면에 속한다.
XY축의 평면 그래프로 세상을 보면 사람이 조금 더 세분화된 모습으로 보인다.
여기에 Z축까지 넣는다면 더 세분화되어 보인다. 예를 들어서 종교적인 성향이 Z축이라고 치자.
그러면 국민은 8종류로 분류된다. 그룹이 더 잘게 나뉘면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좋아진다.
지금처럼 국민을 수평선상에서 2등분하는 것보다는 8배나 더 해상도가 높은 스크린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해상도가 높을수록 실제를 제대로 묘사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세상을 좌우로만 나누는 것은 너무 단순하게 인간을 판단 내리는 1차원적 사고방식이다.
단순한 것은 쉬워서 좋지만, 너무 단순하게 세상을 바라보면 때로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할 수 있다.
세상은 X축만 있는 것이 아니다. Y축도 있고 Z축도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30/2020043002028.html
'文學,藝術 > 디자인·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텃밭도 있고 공용목욕탕도 있는 원룸입니다 (0) | 2020.05.07 |
---|---|
해수 담수화·조명 기능까지 갖춘 물병, 국제디자인 어워드 본상 (0) | 2020.05.04 |
[논설위원이 간다] 높이 50m 붉은 벽돌탑, 천 년의 시간을 담는다 (0) | 2020.04.18 |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155% 늘어난 집의 의무 (0) | 2020.04.10 |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체온도 병균도 악수로 교환… 이래서 인간이다 (0) | 2020.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