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그림, 詩에 빠지다]눈보라 치는 겨울밤 나그네는 무사히 집에 돌아왔을까-유장경 ‘봉설숙부용산’

바람아님 2014. 2. 28. 14:32
눈을 만나 부용산에 머물며(逢雪宿芙蓉山)
유장경(劉長卿)

해 저물어 푸른산이 멀리 보이는데 (日暮蒼山遠)
날은 춥고 초가는 가난하구나 (天寒白屋貧)
사립문에 들리는 개 짖는 소리 (柴門聞犬吠)
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오는 나그네 (風雪夜歸人)
▲ 최북 ‘풍설야귀인’ 18세기, 종이에 연한색, 66.3×42.9㎝, 개인

삶이 아무런 감동 없이 흘러갈 때 이런 독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갑자기 내린 폭설로 한 열흘쯤 인적 끊긴 오두막집에 유폐되어버렸으면. 하루에 한 번씩 지나가던 버스도 끊긴 지 오래, 산새도 날아오지 않는 고립된 초가집에 갇혀 사람 키만큼 높이 쌓인 눈이 녹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면 내게 허락된 삶의 시간이 눈처럼 순정해지고 명징해질 수 있을까. 헛된 욕망, 부질없는 다툼에서 벗어나 본래의 나, 고요한 영혼을 되찾을 수 있을까. 입에 밥 한 숟가락 떠넣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다른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눈보라 속을 뚫고 나그네는 어디로 가는가
   
   내가 그런 막연한 생각만으로 마음속 오두막집에서 칩거하고 있을 때 실제로 눈 때문에 고생한 시인이 있었다. 당나라 시인 유장경(劉長卿·709~786)이다. 한겨울에 길을 떠난 시인이 느닷없이 내린 폭설에 발이 묶였다. ‘눈을 만나 부용산에 머물며(逢雪宿芙蓉山)’는 시인이 하룻밤 몸을 의탁한 초가에서 지은 시다.
   
   해가 저물었다. 눈보라 치는 밤이 찾아왔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기 전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니 산색이 푸르다. 겨울이 시작되는 산골 마을의 초가는 홑겹을 입은 노인처럼 가난하다. 집집마다 추운 밤을 견디기 위해 싸리문을 걸어 닫았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밤이다. 객지에서의 여수(旅愁)에 잠겨 시인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밤이 깊어지도록 뒤척이며 잠을 청하고 있는데 사립문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눈보라 치는 밤에 누군가 돌아오는가 보다. 방 안에 있어도 한기가 느껴지는 이런 밤에 누가 눈 속을 걸어 돌아오는가.
   
   최북(崔北·1712~1786)이 유장경의 시에서 마지막 구절을 취해 ‘풍설야귀인’을 그렸다. 나무가 휘어질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밤길을 지팡이 짚은 나그네가 걸어간다. 예상치 못한 발자국 소리에 잠들어 있던 개가 뛰쳐나와 컹컹 짖는다. 주저앉을 듯 가난한 초가집 앞 나무들이 거칠게 몰아치는 눈보라 때문에 지푸라기처럼 휘날린다. 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찬바람이 휙휙 불어댄다. 먼 산은 어둠 속에서 형체만 남기고 주저앉아 있다.
   
   해가 저물녘에는 푸른색을 띠었던 산이었는데 밤이 깊어지자 흰색과 검은색만으로 정리되었다. 눈 쌓인 산은 빈 화면을 그대로 둔 채 하늘과 산자락에 연한 먹을 물들였다. 지금 내리는 눈 이전에 이미 내린 눈이 상당량 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의 옷자락을 잡고 초가집에 주저앉힌 눈이다. 무채색이 주는 한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묽고 연한 먹의 농담 변화만으로 그린 몰골법의 나무와 짓이긴 듯 깔깔하게 그린 잡풀들이 금세라도 바람에 날아갈 듯 위태로워 보인다. 농묵을 찍어 빠른 필치로 그린 산등성이와 길가의 바위는 휘청거리는 듯한 그림의 가벼움을 지그시 눌러준다. 뒷산 언덕에 삐져나온 짧은 나무와 바위의 속살을 못을 치듯 진한 먹으로 그린 것도 안정감을 준다. 어떤 경물이든 그의 붓끝에서 짓이겨진 겨울밤이 거친 필치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최북은 그림을 팔아 생활한 ‘생계형 화가’였다. 호를 ‘붓으로 먹고산다’는 뜻의 ‘호생관(毫生館)’이라 한 것도 자신의 처지를 시니컬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문인 신광수(申光洙·1712~1775)는 ‘최북을 노래함(崔北歌)’에서 화가의 어려운 처지를 이렇게 적고 있다.
   
   ‘최북이 장안에서 그림을 팔고 있는데/ 평생 오두막 한 칸에 사방 벽이 비었구나/ 문 닫고 온종일 산수를 그리고 있으니/ 유리안경 하나에 나무필통 하나뿐이구나.’
   
   
   거친 인생을 살았던 화가의 가난한 겨울
   
   그런데 유리안경 너머의 그 눈도 한쪽뿐이었다. 자의식이 무척 강했던 그가 어쭙잖은 양반이 그림을 요구하자 자신의 눈을 찔러 거부의사를 밝힌 것이다.
   
   최북(崔北)은 자신의 이름 ‘북(北)’을 파자(破字)하여 ‘칠칠(七七)’이라 불렀다. ‘칠칠맞다’고 조롱하고 싶으면 어디 맘대로 해봐,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북은 중인 신분으로 ‘비천하고 미미했지만 사람됨이 굳세었다. 체구는 작달막했지만 술 석 잔이 들어가면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었다’고 신광수는 전한다.
   
   그는 어느 눈보라 치는 겨울날 질척거리는 성곽 밑에서 얼어 죽었다. 그러니 ‘풍설야귀인’은 유장경의 시를 그린 시의도(詩意圖)임과 동시에 최북 자신의 삶을 예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눈보라 속에서 집을 향해 가던 인물은 집에 당도하기 전에 쓰러져 죽은 최북 자신의 자화상일 것이다. 실제로 당나라 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당시화보(唐詩畵譜)’ 속 ‘봉설숙부용산(逢雪宿芙蓉山)’을 보면 눈보라 속 나그네가 초가집으로 들어오고 있다.
   
   최북의 그림 속 나그네가 따뜻한 집을 지나쳐 컴컴한 어둠 속을 향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시는 읽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백 명이면 백 가지의 심상을 일으킬 수 있는 예술 작품의 위대성과 미묘함을 최북의 ‘풍설야귀인’에서 확인한다.
   
   그런데 유장경은 시 속에 등장한 나그네를 진짜 본 것일까. 아니다. 그저 잠 못 드는 밤에 개 짖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나머지는 시인의 상상이다. 개가 짖는구나. 그럼 누가 오겠구나. 그는 이 추운 날에 어딜 다녀오는 걸까로 시작된 시인의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비로소 찾아오는 두고 온 집에 대한 그리움. 기회만 있으면 떠나고 싶었던 집이 아닌가. 그런 남루한 집이 그립다니.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고 감추고 싶었던 처지가 행복했다니. 여기까지 생각이 진행되면 시인의 마음은 이미 몸보다 앞서 집에 가 있게 된다.
   
   돌아오면 비로소 알게 된다. 특별한 사건 하나 일어나지 않은 매일매일이 그대로 행복이었다는 것을. 버리고 싶었던 현실이 가장 귀한 장소였고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는 명당이라는 것을. 입에 밥 한 숟가락 떠 넣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철없는 생각 대신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여태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때부터 나그네는 밥 한 숟가락을 떠 넣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되리라. 그 쉬운 진리를 깨닫기 위해 열흘씩이나 외딴 마을 오두막집에 갇힐 필요는 없다. 최북의 ‘풍설야귀인’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