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이 떠올라 우연히 창문에 썼더니
종이가 찢어지며 시도 따라 찢어지네.
좋은 시라면 사람들이 꼭 전할 테고
나쁜 시라면 사람들이 꼭 침 뱉으리.
시를 전한다면 찢어진들 무슨 상관이고
침을 뱉는다면 찢어져도 괜찮겠지.
한바탕 웃고서 말 타고 떠나노니
천년 세월 흐른 뒤에 그 누가 나를 알랴.
(출처-조선일보 2014.08.30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임계역에서 | 臨溪驛 得句偶書窓(득구우서창) |
조선 전기 문신 어세겸(魚世謙· 1430∼1500)이 정선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임계역에 하룻밤 묵었다.
창문의 흰 창호지를 보고 시상이 떠올라서 붓을 휘둘러 썼다.
우연히 쓴 이 낙서 같은 시는 수많은 나그네가 오고 가는
여관 창문 위에서 얼마나 버틸까?
손을 많이 타는 종이가 찢어지면 좋든 나쁘든 시는 사라지리라.
다만 시가 좋으면 사람들이 입으로 전하고,
시가 나쁘면 존재조차 잊힐 것이다.
시는 독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지 종이 위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시인은 어떻고, 우리 많은 사람은 어떨까?
뒤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흔적으로 남지
않는다면 그 어떤 든든한 기록도 자취도 허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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