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1.0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졸수재(拙守齋) 조성기(趙聖期·1638~1689)가 김창협(金昌協·1651~1708)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대 지식인들의 통폐를 이렇게 질타했다.
"선비의 공부가 어느 한 곳도 실처(實處)에 맞는 법이 없고 어느 한 가지 일조차 박자를 맞추지 못한다.
억지로 꾸미다가 어지러이 무너져 온 세상을 하나의 물거품 같은 경계로 만들고 만다.
그런데도 앞서 선왕의 도리와 정주(程朱)의 학문을 향한다는 자들은
여기에 이르러 물결을 밀쳐 파도를 조장하고(推波助瀾·추파조란),
바람을 놓아 횃불을 끄려는(縱風止燎·종풍지료) 데로 돌아가는 모습만 보여준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고 뭇 맹인이 구덩이 속을 헤매는 것 같다.
캄캄한 길을 가다 진흙탕을 만나 혼미하여 헤매는 모습이 처음 볼 때는
나도 몰래 껄껄 큰 웃음이 나오더니, 웃음을 그치고 나자 어느새 또 근심스레 슬퍼진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윤선거(尹宣擧·1610~1669)에게 보낸 답장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윤선거(尹宣擧·1610~1669)에게 보낸 답장에서 이렇게 적었다.
"오늘날 흉흉한 것은 저들이 근심할 만한 것이 아니올시다.
젊은이 한 무리가 능히 조용히 기다리지 못하고 바람을 놓아 불을 끄겠다는 식의 거동이 있으니
이것이 걱정할 만한 일이지요.
하지만 어른이 나서서 누르려 한들 힘을 얻을 이치가 없고 보니 그저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두 글에 모두 종풍지료(縱風止燎)란 말이 나온다.
두 글에 모두 종풍지료(縱風止燎)란 말이 나온다.
바람을 불어서 횃불을 끈다는 뜻이다.
촛불이야 입으로 불어서 끈다지만 횃불이나 화톳불에 바람을 놓으면 불길을 걷잡을 수 없다.
불을 끈다는 것은 시늉이고 불 끈다는 핑계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형국이다.
이 말은 수나라 왕통(王通)의 '문중자(文中子)'에 처음 나온다.
함께 짝이 되어 쓰이는 말이 추파조란(推波助瀾)이다.
물결을 밀어 더 큰 물결을 조장한다는 뜻이다.
슬쩍 돕는 척하면서 일을 더 꼬이게 만든다.
슬쩍 돕는 척하면서 일을 더 꼬이게 만든다.
겉으로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정의를 가장하지만 실상은 풍파를 일으키고 문제만 더 키운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文學,藝術 > 고전·고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민의 세설신어 [133] 매독환주(買櫝還珠) (0) | 2014.11.09 |
---|---|
[안대희]고서 속 ‘그윽한 향기’ 가을 새벽 채우네 (0) | 2014.11.08 |
[가슴으로 읽는 한시] 서울 길에서 옛 벗을 만나다(戲贈周卿丈) (0) | 2014.11.03 |
정민의 세설신어 [132] 발호치미(跋胡疐尾) (0) | 2014.11.02 |
정민의 세설신어 [286] 은환위목(銀還爲木) (0) | 2014.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