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日常 ·健康

밀리터리 잡설5/아이크의 편지

바람아님 2015. 1. 11. 11:51
[J 플러스 2015-1-9 일자]
 d-day.jpg

 지난해 2014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1944년 6월 6일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ㆍ자유 프랑스ㆍ호주ㆍ폴란드ㆍ노르웨이 등 8개국의 연합군 15만6000명이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령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군사작전입니다. 사상 최대의 상륙작전으로 유명하죠. 연합군의 상륙작전으로 나치 독일은 이듬해 패망하게 됩니다. 유럽 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선 여러 행사가 벌여졌습니다만, 한국에선 그리 각광을 받지 못했습니다.
 
 d-day-veterans.jpg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했던 조 카티니(91)와 데니스 헌터(90)가 지난해 6월30일 70주년 기념식에서 70년만에 처음 만나 웃고 있습니다. 사진 설명엔 농담을 나누고 있는 중이라고 나왔습니다.

d-day2.jpg
D-day 당시 사진
  
 제가 뜬금 없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렇습니다.

라이언일병구하기.jpg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
 






 얼마전 독서를 하다 아이젠하워의 편지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1890년 10월 14일 ~ 1969년 3월 28일). 유럽 연합국 총사령관으로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했습니다. 나중에 미 34대 대통령(1953~61)을 지냈습니다. ‘아이크(Ike)’란 애칭으로 유명하죠.


eisenhower.jpg

아이크

 그는 노르망디로 향하는 연합국 장병들에게 지휘서신을 보냅니다. 







letter1.jpg
 
 “연합 원정군의 육해공군 장병 여러분!
 
 여러분은 수개월간 준비한 위대한 십자군 원정을 막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가 여러분을 보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용맹한 우방국들과 다른 전선의 전우들과 함께 여러분은 독일군을 쳐부수고 유럽인들을 억압하는 나치 독재 정권을 말살해 우리의 자유 세계를 지킬 것입니다.
 여러분의 임무는 쉽지 않습니다. 적은 잘 훈련돼 있고 잘 무장하고 있으며 실전 경험으로 단련돼 있습니다. 적은 치열하게 저항할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1944년입니다! 1940년에서 1941년엔 나치가 승리를 거뒀지만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연합국은 전투에서 독일에 큰 패배를 안겨줬습니다.
 독일의 공군력과 육군력은 우리의 항공 공격으로 크게 약화됐습니다. 후방 전선에선 적을 압도하는 물량의 무기와 탄약은 물론 엄청난 예비 전력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전세는 바뀌었습니다! 세계의 자유민들이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용기와 헌신, 전투력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승리 이외는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그리고 이 위대하고 고귀한 임무를 수행하는 여러분에게 전능하신 하나남의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두 얼굴 전쟁본능』 p.136 번역을 존댓말로 바꿔 옮김)
 
 아이크의 진심이 담긴 이 편지는 20세기의 명문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러나 아이크가 결국 부치지 않은 편지도 있었습니다. 상륙작전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편지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상륙작전 즈음 기상 상태가 악화돼 D-Day는 6월 5일에서 일단 연기됐습니다. 
 6월 5일 오후 4시 15분 아이젠하워는 다음날인 6월 6일 바람과 비가 잠잠해질 것이라는 기상 예보를 듣습니다. 그러나 날씨는 변덕스럽습니다. 슈퍼컴퓨터를 사용한다는 한국 기상청의 일기 예보도 자주 틀리잖습니까. 작전 일시는 달빛과 썰물, 날씨와 같은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날짜를 미루면 한달을 늦춰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비밀이 새나갈 우려도 있습니다.

eisenhower1.jpg

작전에 나서려는 공수부대원을 격려하는 아이크
 





 아이크는 오후 9시 45분 입을 열었습니다.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썩 내키지는 않지만 명령은 내려야 합니다.…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GO하기로 결정을 내린 거죠. 그는 줄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썼습니다.



letter2.jpg

 “쉘부르~르아브르 지역에 상륙작전을 감행했지만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저는 병력들을 철수시켰습니다. 가능한 최상의 정보를 바탕으로 상륙 시점과 지역을 결정했습니다. 우리의 육해군 장병은 용기와 헌신을 갖고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작전에 관한 모든 비난과 책임은 다 제가 지겠습니다.”
(※번역은 제가 했습니다. 편지 마지막에 날짜가 7월 5일로 돼 있습니다. 당시 그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아이크는 한달 동안 이 편지를 지갑에 넣고 다니다가 나중에 보좌관에게 건넸답니다. 한 번도 부쳐지지 않은 아이크의 또 다른 편지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묻혀지게 됩니다. 그가 후에 왜 미국의 대통령에 오를 수 있는지 이해가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