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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여기 잔돈이세요"

바람아님 2015. 1. 14. 10:55

(출처-조선일보 2015.01.14 오정석·EBS PD)


오정석·EBS PD 사진중학교 1학년 작은아들 녀석이 난데없이 연필을 집어던지며 말한다. 

"아, 자꾸 반말하니까 기분 나빠서 공부 못하겠네." 

뜬금없는 태도에 의아해 물었다. "누가?" 아들이 대답한다. "참고서가요."

학업 스트레스인가, 건강이 안 좋은 건가.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잠깐 헷갈렸다. 

아들 녀석이 부연 설명을 한다. "초등학교 문제집은 '문제를 푸시오'라고 공손하게 말했는데 

중학교 문제집은 '문제를 풀어라'고 반말로 나오잖아요." 

어이없고 또 귀엽기도 해서 그냥 웃고 말았는데, 아주 웃을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에 가서 물건을 사다 보면 "여기 잔돈이세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화장품 가게에선 "이번 신상품이세요", 카페에선 "라떼 두 잔이세요" 등 사물 존칭이 난무한다. 

공손함이 지나치니 누구를 향한 존경심인지조차 모르겠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한두 살 된 자녀에게도 두 손을 받쳐 들고 공손히 "○○야, 엄마한테 사탕 주세요" 식으로 가르친다. 

물론 어릴 때부터 존댓말에 익숙해지도록 하려는 교육적인 의도야 십분 이해하지만, 그리 바람직하진 않은 것 같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제대로 된 교육은 부모 간의 태도, 조부모에게 보이는 태도와 언어 습관을 통해 

자연스레 상황에 맞게 배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적인 차원이라고는 하나 어린 자녀에게까지 존댓말을 쓰는 건 불필요한 존댓말 인플레이션이 아닐까? 

그런 부모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정작 그들의 부모에게도 깍듯이 존댓말을 쓰는지 궁금해진다.

어느 음식점에서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출구 왼쪽이세요. 이쪽으로 가면 됩니다"라 한다. 

화장실은 왼쪽이신데, 나는 가면 된다니. 나는 화장실보다 낮은 존재란 말이던가

존댓말을 듣고도 헛웃음이 나온다. 참고서에도 극존칭이 쓰이면 어떻게 될까? 

공부하기 싫어하는 우리 아들도 대접받는 기분으로 신나서 공부 좀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