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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日本 역사수정주의와 수정주의적 對日 전략의 충돌

바람아님 2015. 3. 2. 21:12

(출처-조선일보 2015.03.02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수)

역사 의식 바꿀 의향 없는 日, 국제 연대 통해 압박 가하는 韓
兩國 맞대결, 성과 없고 소모적… 일본 내 역사문제 友軍 힘 잃어
不信 찬 적대적 시각서 벗어나 개방적 대화 통해 새 길 열어야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수 사진
1980년대 말 일본의 부상이 회자되던 시절, 미국에서 일본을 다시 보자는 '수정주의(revisionism)'가 

대두되었다. 일본의 보호주의적 시장 체제는 미국의 자유무역 체제와 다르기 때문에 국제 질서에 

대한 위협이고 스스로 시장을 개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기 때문에 외압(外壓)을 통해 일본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를 뒷받침한 논리가 일본 외교의 본모습은 미국의 압력에 순응적으로대응한다는 '반응형 외교론'이었다.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 등장 이후 역사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정체성을 다시 세우려는 

'역사수정주의(history revisionism)'가 강화되고 있다. 

그 핵심에는 일본이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나라'로 다시 태어나야 하며, 과거의 역사적 잘못에 대한 

사죄와 반성만을 되풀이하는 부끄러운 나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이 놓여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역사 관련 망언이 되풀이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늘어나고, 영토 문제에 대한 강경 입장이 튀어나온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경제 침체와 불황을 벗어나 '강한 일본'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잠재의식의 구현이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비판을 둔하게 만들고 있다. 정치적으로 열세에 있고 분열된 일본 야당 세력은 정치적 대안 제시에 실패하고 있다. 

자민당이 독주하다 보니 균형감을 상실한 논의가 일방통행 중이다.

한국은 수정주의적 대일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역사인식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용인할 수 없고, 스스로 역사인식을 바로잡을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 강한 압력을 가해야 하며, 그래도 일본이 바뀌지 않는다면 국제적 연대를 통한 고립 압박 

정책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이 바뀌지 않는 한 상대하지 않을 것이고, 일본이 스스로 바뀔 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다는 '전략적 인내'가 근저에 흐르고 있다.

역사수정주의를 바로잡을 의향이 없는 아베 내각과 수정주의적 대일 전략을 바꿀 의향이 없는 박근혜 정부가 맞대결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제 일본은 원론적인 역사수정주의를 재고해야 하고, 한국도 수정주의에 기반한 대일 전략을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

일본의 우파들은 한국 요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한국의 역사인식에 맞추어 거듭해서 사죄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이미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역대 일본 정부의 입장을 빠뜨림 없이 받아들이고, 고노·무라야마·

고이즈미 담화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하지 말고, 그에 반대되는 언행을 자제해 달라는 것이다.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성의 있고 진정성 있는 조치'라는 것도 반대 세력이 늘 토를 다는 이중성을 없애고 살아계신 

피해자 할머니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일본이 주도적으로 제시하라는 것이다.

한국은 대일 수정주의 전략이 쉽게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미국이 시장개방 압력을 넣었을 때 성공한 것은 일본 내에 호응 세력이 있을 때뿐이었다. 

지금 역사 문제에 관한 일본 내 우호 세력은 힘을 잃었다. 국제적 연대를 통한 대일 고립 전략은 소모적이고 필요 이상의 

경쟁 구도를 낳는다. 일본의 보수 세력은 한국의 압력에 순응적으로 반응하는 게 아니라 적대적으로 반발한다. 

일본이 외압에 순응한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한·일 양국은 서로를 적대적으로 보는 진영 논리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양국 내에는 관계 회복을 바라는 세력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의혹과 불신에 찬 대결적 자세로는 관계 회복을 이룰 수 없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주장도 수용할 수 있는 도량을 가지고 서로의 접점을 찾기 위한 개방적 대화를 할 때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