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自然과 動.植物

[만물상] 바이러스

바람아님 2015. 6. 8. 08:43

(출처-조선일보 2015.06.08  김기천 논설위원)

1898년 네덜란드 미생물학자 마루티누스 베이예린크는 담배모자이크병(病)을 연구하면서 세균보다 훨씬 작은 무언가가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균을 막는 미세한 여과지로도 걸러지지 않았고 알코올을 넣거나 열을 가해도 소용없었다. 
그는 이 정체불명 물체를 '살아 있는 감염성 액체'라고 표현하면서 '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뱀의 독'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였다. 

▶바이러스는 평균적으로 세균의 1000분의 1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작다. 
종족 보존에 필수적인 유전자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단백질 껍질로 구성돼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 활동할 때는 폭발적으로 개체 수가 불어나지만 세포 바깥으로 나오면 전혀 활동하지 않는 
단백질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엔 바이러스를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다고도 했지만 
요즘엔 생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만물상] 바이러스
▶바이러스는 인류 역사에서 숱한 재앙을 일으켰다. 
1500년대 초 스페인 정복자들이 옮긴 천연두 바이러스로 중앙아메리카 원주민의 90%가 사망했다. 
1918년에 크게 번졌던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에서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에볼라 출혈열, 사스, 신종플루에 이르기까지 바이러스로 인한 새로운 전염병 출현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가 인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10% 정도는 바이러스의 힘으로 생산된 것이라고 한다. 
지구상 모든 생물이 바이러스로부터 진화했고 인간의 유전자에도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미국 과학 저술가 칼 짐머는 "인간은 포유동물과 바이러스의 분리할 수 없는 혼합물"이라고 했다. 
바이러스가 기후와 토양을 비롯해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도 했다. 
지구는 '바이러스 행성'이라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인류와 바이러스의 대결'이라는 시각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대부분 바이러스성 질병은 치명적이지 않다. 
숙주(宿主)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메르스도 마찬가지다. 
치료약이 없다고 하지만 불치병은 아니다. 
전염성이나 치사율도 그리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위생 관리에 신경을 쓰고 신중하게 움직이면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다. 
지나친 공포로 과잉 반응하는 게 메르스 자체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